“칼국수만큼 시원한 여성정책 기대하세요”

짧은 머리에 꼭 여민 셔츠 칼라. 살짝 미소 띠며 소박한 웃음을 털어 내며 ‘은근하게 우러나는 찌개’ 같은 매력을 지녔던 그다. 하지만 사무관에서 과장으로 승진한지 3개월만에 다시 만난 윤성혜(37) 경남도 여성정책과장은 평소와 달리 담담하고 긴장된 표정이다. 돌아서면 떨어지는 출산율과 오늘도 2중 3중고에 한숨을 내쉬는 여성들 앞에 긴장을 풀기엔 아직 이르다고 여겨서일까. 그럼에도 그의 소탈한 성품은 감출 수 없는 듯 창원에 있는 ‘왕창이 칼국수집’을 찾았다.

“여성동료들과 자주 오는 곳이에요. 이 곳에 오면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랑 수다 떨며 칼국수랑 떡볶이랑 먹었던 기억이 풋풋이 떠올라요. 칼국수도 맛있고 만두랑 파전도 괜찮아요. 다 먹어 볼까요?”

식성도 좋고 뱃짐도 두둑해 이 정도는 시켜야 한다며 미소를 짓더니 이내 긴장된 표정을 푼다. 수타면이라 면이 통통해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 한 그릇 소복이 담더니 국물부터 후루룩 들이켠다.

▲ 윤성혜 과장이 여성 동료들과 자주 들르는 칼국수집은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사진/박종순 기자
도내 몇 안되는 30대 간부

그는 평소에도 음식에 민감하다. 아니 둘째 아이를 낳고부터다. 둘째가 호되게 아토피를 치른 탓에 화학조미료를 멀리 했다.

“멸치며 다시마는 기본이고 버섯을 갈아 조미료 대신 씁니다. 처음엔 몸에 좋다고 시작했는데 음식 맛도 달라지더라고요. 끝 맛이 텁텁하지 않고 맑아요.”

그는 지난 2월 도 문화예술과 담당사무관에서 여성정책과장으로 승진했다. 도내에서 몇 안되는 30대 후반의 간부다. 마산에서 고교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20대 중반 고시에 합격해 남들보다 조금 승진이 빠르다.

“고시합격한 사람들 얘기 들으면 하나같이 공부 많이 안하고 붙었다는데, 잠자는 시간 빼고는 정말 공부만 했어요. 남들보다 초등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서 덕을 봤습니다.”

‘여풍’은 이제 더 이상 큰 뉴스거리가 안되는 시대다. 사시·행시 등 공평한 시험 앞에 당당하게 실력을 드러내는 일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이젠 국무총리란 직책 앞에 꼭 여성을 강조해야 하나 의아할 정도다.

하지만 여성들은 뭔가 못마땅하다. 객관적인 증거를 보여주지만 ‘능력만큼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을까’의문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남성들 비해 여성은 출산이라는 큰 일 치르고

그것도 모자라 육아·가정 일 2중고에...

직장까지 갖게 되면 3중고 치르는 게 지금의 현실.

여성권익 높이기 위해 남성들이 짐을 나눠야 한다.”


2월 문예과 사무관서 승진

남녀가 평등한 이 시대에 여성을 강조하는 것이 되레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그는 남성이 여성의 짐을 나누는 것이 여성권익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권익을 위해서는 남성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남성들에 비해 여성은 출산이라는 큰 일을 치르고 그것도 모자라 곧이어 육아·가정 일이라는 2중고에 직장까지 갖게 되면 3중고를 치르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여성정책을 아무리 잘 세워도 남성들이 그 몫을 나누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가 여성정책과에 발 딛고 얼마 후 도 여성발전 기본조례가 제정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도 자체 여성정책이 거의 없는 실정인데다 기본조례 또한 전국에서 가장 후발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는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싶다.

“좋게 말하자면 직원들이 완벽하게 하려고 했다고 해야할까요. 전국에서 만든 조례를 모아서 고를 건 고르고 모을 건 모았습니다. 여성단체들의 의견을 모으는 벅찬 과정도 거쳤습니다.

둘째 아이 아토피 후 음식 민감

올해 7월 도의회 의결을 거쳐 8월께 시행할 예정입니다. 도 여성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라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지겠죠. 어깨가 무겁습니다.”

도 자체 정책 문제는 예산이 가장 걸림돌이다. 그는 예산을 따내기 위해 한창‘소통’중이다. 그리고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소통의 방법을 배우는 중이기도 하다. 공무원 사회에서 젊은 여성간부 등장은 아직은 어색한 편이기에 익숙해진 조직문화를 자연스럽게 새로 짜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남성중심의 술자리 문화와 같은 권위적인 조직 분위기를 한 올 한 올 자연스럽게 바꿔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드네요. 그래도 요즘은 여성 신입 동료들이 많이 늘어 그들이 술자리를 주도하는 고정관념을 깨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아요.”

버섯 갈아 조미료 대신 사용

전국 최초 도내에서 창립하는 ‘다문화 가정 연대’에 그는 남다른 시선을 보낸다. 국제결혼이 일반화된 지금, 외국인 여성정책도 함께 이끌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도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하는데 그들이 자립적으로 만들었어요.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듭니다. 외국 여성들은 농촌에 아이의 해맑은 목소리를 울린 주인공들이자, 그들의 2세는 제 2 외국어가 가능한 능력있는 일꾼들입니다. 앞으로 그들을 위한 정책도 함께 이끌고 갈 예정입니다.”

차분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다가서는 조용한 카리스마. 남성의 틀에 맞춘 리더십이 아닌 소박하고 털털한 자신의 스타일로 열성적으로 달려가는 윤성혜 과장만의 카리스마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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