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4·26 국회의원 총선 때의 일이다. 난 그 때 군복무를 마치고 막 복학한 대학생이었다. 어느 날 동기 녀석 중 한명이 일당 만 오천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물어보니 이른바 ‘선거 알바’였다. 그냥 몇 시간동안 따라 다니기만 하면 점심도 사주고 일당도 준단다. 당시 하루 ‘노가다’ 일당과 맞먹는 액수여서 어느 정당의 누구인지도 모른 채 별 생각 없이 따라 나섰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후보자의 이름과 기호가 인쇄된 어깨띠를 받는 순간 ‘아차 잘못 따라 나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정치적 신념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정당이었던 것이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볼까 하는 두려움에 이리 저리 눈치를 보며 대열 속에 몸을 숨겼지만, 100m를 채 나아가지 못했다. 읍내 장터에 들어서는 순간 상대후보 지지자들의 대열이 맞은편에 나타난 것이다.

슬그머니 어깨띠를 벗어 동기 녀석에게 던져주고 대열을 빠져나왔다. 그 길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대열을 찾아 합류해버렸다.

이 때부터 의도하지 않은 선거운동을 사나흘 간 하게 됐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졸업 후 신문기자가 된 탓에 다시 선거운동에 합류할 일은 없게 됐지만, 선거취재를 할 때마다 유독 ‘선거 알바’로 나선 대학생들에게 눈길이 가는 건 아마 그 때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등록금 투쟁 이어 5·31 연대 활동

그런 ‘알바생’들을 볼 때마다 ‘과연 저 학생들이 스스로 지지하는 후보일까’ 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

결국 다가가 기자 신분을 밝히고 물어보는데, 십중팔구는 적의와 경계심을 드러내면서 “왜 그런 걸 묻느냐”고 반문한다.

이처럼 당당히 지지한다고 말하지 못하거나, 지지한다면서도 그 이유를 대지 못하는 경우 ‘알바생’으로 보면 된다. 그런 학생들은 돈에 팔려 정치적 신념을 팽개쳤거나 아예 신념이고 뭐고 없는 부류일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이런 ‘선거 알바’는 몸을 파는 매춘보다 더 나쁜 짓이다. 매춘은 생계를 위해 그저 몸을 팔 뿐이지만, 이건 ‘정신’까지 함께 파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이 있는 반면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런 대학생들도 있다. 경상대 총학생회장 유은주 같은 학생이다.

그는 등록금 인상 철회를 위해 한달이 넘게 단식을 마친 뒤 건강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이번엔 ‘5·31 지방선거 투표참여를 위한 경남지역 대학생연대’를 만들었다.

“등록금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내에서 먼저 정치참여 운동이 일어야 하겠기에 도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학교 안에 유권자 운동 본부를 만들었습니다.”

‘선거알바’ 추방운동도 해주길

참 대단하다. 등록금 문제를 학내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로 볼 수 있는 의식도 대단하지만, 이를 당장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와 연결지어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가는 걸 보면 앞으로 큰 일을 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그는 겸손하고 소박하기까지 하다.

“무슨 거창한 활동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동제 기간에 학교에 선전물을 게시하거나 투표에 참여하자는 버튼을 달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벌써 나는 유은주의 팬이 된 것 같다. 신문에 그의 사진이나 이름이 나오면 반갑고, 소식이 뜸하면 궁금하기까지 하다.

팬으로서 한 가지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대학생 선거참여 운동만 해도 바쁘고 힘들겠지만, 돈 몇 푼에 신념까지 팔아먹는 ‘대학생 선거 알바 추방운동’도 좀 해줬으면 좋겠다. ‘유은주 버전’으로 부탁한다.

“무슨 거창한 활동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선거기간 학교 안에 펼침막이나 선전물을 통해 그런 ‘알바생’들이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나마 느끼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대학생도 당당한 유권자이므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후보를 지지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오히려 적극 권장할 일이다.

다만 머리 속에 ‘돈’만 가득한 대학생들이 역겨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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