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 당신 혹 서울시민?

당신은 ‘내부 식민지화’ 돼 있다. 뭔 소리? 아직까지 ‘말은 나서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서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통하는 시대다. 대한민국 전 국민의 눈과 귀는 ‘서울’이라는 오직 “한 방향”으로 쏠려있다. 이를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서울 공화국’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한 바 있다. ‘내부 식민지화’라는 단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전북대학교 신방과 강준만 교수는 올해 초 ‘신문 위기 시대의 지역신문 경영방안’ 토론회에서 “지방신문은 신문의 위기와 더불어 날로 가속화되고 있는 ‘내부 식민지화’로 인해 이중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강 교수는 “1980년대 초 남미에서 대두된 ‘내부 식민지’ 이론이 식민지가 국가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극심한 지역간 불평등의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지역이 서울에 길들여진 대한민국 내의 ‘식민지’라는 말로 해석된다.

   
“전국지에는 지역개념 없어”


강 교수의 말처럼 ‘서울지(서울 지역에서 발행해 전국으로 배포되는 신문)’에는 지역이 없다. 그 예를 한번 찾아보자.

경남도민이라면 마산에 홈플러스가 입점했을 때, 내가 먹고 사는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홈플러스 입점으로 차가 막히지는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이런 부분을 지역 신문에서는 다루지만 경남지역 신문이 아닌 서울 지역 신문에서는 다룰 이유도 없거니와 아예 관심 밖의 일이다.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에서 홈플러스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자. 2005년 9월 21일자 ‘내년초 개점 앞둔 홈플러스 마산점, 유통가 술렁’이라는 기사부터 2006년 5월 10일자 ‘홈플러스 마산점 교통난 개선책’, ‘죽 쒀서 홈플러스 주는 꼴 될라’에 이르기까지 관련 기사가 100건 가까이 검색된다. 하지만 한겨레신문에서는 관련 기사를 아예 찾을 수 없었으며, 중앙일보의 경우 홈플러스에서 있었던 1인 시위 기사 1건이 전부다.

   
지역신문, 100%지역에 목숨건다


경남도민일보와 중앙일보, 한겨레신문의 5월 8일 월요일, 5월 9일 화요일자 신문에서 우리 지역과 관련한 뉴스를 비교·분석했을 때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

지난 5월 8일 월요일자. 경남도민일보 기사 73건(사설·칼럼 등 제외) 가운데 경남 지역을 다룬 소식은 62건이었다. 스포츠, TV 연예 기사 각 3건씩을 제외한 나머지 기사 11건도 경남 지역을 직접 다루고 있지 않지만 우리 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다. 가령, 신문공동배달을 통해 여론의 다양성을 꾀할 신문유통원과 관련한 미디어 기사나 2009년까지 농어촌 지역 658개 학교·통폐합과 관련한 기사가 그 예다.

그러나 같은 날짜 중앙일보와 한겨레를 보면 사정은 다르다. 중앙일보 5월 8일 월요일자 기사 76건(섹션 제외한 본지 기사, 이 가운데 사설·칼럼 등을 제외한 기사, 한겨레 분석도 동일) 중 경남 지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뉴스는 단 한 건도 없다. 한겨레신문 역시 68건의 기사 중 경남 지역 뉴스는 찾을 수 없다.

눈·귀 오직 서울로 서울로…내부 식민지화

한겨레신문 지역 사회면도 부산·울산·경남 지역이 한데 묶인 섹션에 부산 지역 뉴스가 대종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이는 다음날 5월 9일 화요일자 신문에서도 반복된다. 경남도민일보 79건 기사 중 경남 지역과 관련 없는 뉴스는 없다. 그러나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의 경우 이와 정반대다. 중앙일보는 5월 9일자 신문 74건 중 지방선거와 관련한 경남뉴스가 1건, 한겨레신문은 81건의 기사 가운데 단 한건도 없었다.

지역 신문은 언론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지역 뉴스를 중점적으로 취급한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100% 지역뉴스에 목숨을 건다. 반면 전국 단위 신문은 지역 뉴스에 관한한 한자릿수 내지 0%대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신문구독과 별 상관성이 없다. 서울 지역민은 예외로 친다 하더라도, 전국의 지역민 대다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과 관련한 뉴스를 하나도 싣지 않는 서울지를 구독하고 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위원장 이춘발)가 지난 해 말 전국 1만 247명을 대상으로 한 구독자 조사 결과는 이를 입증하는 실사례다.

   
구독률 전국지 41%, 지역지 5%


지발위에 따르면, 현재 구독하고 있는 신문이 무엇이냐고 물은 결과 상위 10개 신문이 부산일보를 제외하곤 모두 전국 단위 발행 신문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3개 신문의 비율이 66.1%로 나타났다. 또한 구독신문 비율은 전국지 41.5%, 지역일간지 5.2%였다. 지난 1주일 동안 열독한 신문을 봤을 때도 전국지 66.3%, 지역일간지 10.4%의 결과가 나왔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김해시 삼정동에 사는 이혜진(26) 씨에게 지역민들이 지역 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자 “지역 신문은 두께가 얇고, 볼게 없다라고들 얘기하지만, 실제로 바로 ‘내 이웃 이야기’인 지역 뉴스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부 식민지론을 뒷받침하는 분석이다.

사는 터전에 무관심하기 때문

지발위는 우리 지역 시·군·구와 관련한 정보를 알고 있는지를 묻는 인지도 조사 역시 동시에 시행했다. 그 결과 지역민들은 자신의 삶터인 지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지역에 대해서 ‘별로 모르는 편이다’가 48.5%,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다’ 31.2%, ‘많이 알고 있다’ 3.3%, ‘전혀 모른다’ 17.1%였다.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경남민언련) 황미영 간사는 이에 대해 “지역민들이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은 모른 채, 마치 모두가 서울 시민인 것처럼 행동한다”라고 말했다. 황 간사는 “지역민들이 전국지에만 길들여져서 지역민들이 실제 생활에서 소외돼 제 권리를 못 찾는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지역민들이 정작 제 고장 출마자는 모른 채 ‘강금실 대 오세훈’구도는 줄줄 꿰는 현상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그들에겐 강금실이나 오세훈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구원자’가 된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지방은 오직 먹거리, 고기잡이, 축제, 미담, 사고 등을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만 다뤄질 뿐 지역민의 삶이 없다”고 단언한다.

내고장 출마자 모른채 강금실·오세훈만 ‘줄줄’

굳이 중앙집권적 구조를 되풀이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신문을 보고, 뉴스를 접하면서, 사고를 가다듬는 총체적인 과정이 ‘내부 식민지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경남민언련 강창덕 공동 대표는 “지역민들이 불편할 때는 지역 신문을 찾으면서, 평상시에는 지역 신문이 볼게 없다고 불평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며, “지역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지역 신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지역신문을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를 위해서는 지역민뿐 아니라 지역 신문 또한 지역에 대한 자긍심, 소속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상층부 뉴스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생활 밀착형 뉴스를 발굴하도록 애써야 한다”고 말했다.

거제시 옥포동에 사는 김혜경(28) 씨는 “전국지에서는 서울, 경기 지역 중심이라 관심 있게 보는 부동산 시세표가 안 나오는데, 지역신문에서만 이를 확인할 수 있다”며 지역 신문만이 지역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 줄 수 있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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