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안은 '쌀 한 톨의 식사'



초등학교부터 공부에 얽매여 학교와 학원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아이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입학하면 이 사회에서 유일한 희망쯤으로 여기는 대학입시라는 족쇄가 청소년들을 얽맨다.
그 족쇄에서 발버둥치다보면 또래 동무들과 어울려 만들 만한 학창시절의 추억거리도 갖기 힘들다. 이런 일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익숙한 일상.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청소년들도 있다.
지난 5일 오후 8시 창원시 늘푸른 전당에 100명이 넘는 또래의 고등학생들이 모였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둘러맨 채 강당에 모인 청소년들은 전당소속 동아리 4팀과 창원시내 고등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 5팀의 아이들.
학교수업을 마치기가 무섭게 전당의 강당에 모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그램을 기획한 ‘청소년 기아체험 24시 캠프’에 참가한 것.
아이들은 하룻동안의 기아체험을 통해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전세계 어린이와 이웃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은 하룻동안 굶어 절약한 돈을 기아체험본부에 성금으로 기탁했다.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자원봉사도 하고 뜻 맞는 친구들끼리 취미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봉사대회 참가준비를 하다가 이왕이면 이웃도 생각하고 봉사활동의 의미도 높일 수 있는 기아체험을 생각하게 됐죠.”(공미애.중앙여고2)
자신들이 기획한 행사에 참가해서인지 아이들은 모든 행사에 적극적이었다. 캠프는 하룻동안의 생활수칙을 담은 선서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됐다. 선서문에는 기아체험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고 캠프를 이탈하지 않을 것과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등 자신들과의 약속을 담았다.
곧바로 참가자들은 동아리열전과 촛불의식, 기아어린이들을 생각하는 토론으로 캠프의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 아침 기상과 함께 아이들은 쌀 한 톨로 첫 식사를 했다. 상징적인 의미였지만 밥을 굶는 아이들에게 한끼 식사가 얼마나 간절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생수통을 옆구리에 끼고 물로 허기를 달래던 지오(18.경일고2)는 “두끼를 굶은 것뿐인데도 견디기 힘드네요. 매일매일을 굶어야 하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기아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는 기아체험 신문만들기와 편지쓰기, 기아.가난.질병에 관한 비디오시청, 수화노래배우기와 굶주림과 질병에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희망나무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룻동안 굶는 체험에 참가했던 아이들. 단 하루였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몸으로 체험하고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성금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으로도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캠프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기아체험 캠프를 처음 생각한 여진(17.경일고)이는 “캠프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중에 어린이가 많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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