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무대 만든 1등 배우·1등 관객

‘나는 우는 듯 웃으며 죽었습니다.’

천수를 누렸다 할 82세의 나이에 잠자면서 죽었다는 것을 ‘대단한 행운’이라 여기는 마음씨 고운 할머니가 독백을 시작한다. 나긋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밴 목소리엔 질곡 많았던 인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15세 때 단종과 정략결혼을 하고 2년이 되던 해 단종의 폐위로 인해 서인으로 추락하게 된 비련의 여인은 염색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날품팔이꾼으로 전락하게 된다.

단종과의 애틋했던 사랑의 기억은 불과 2년, 피비린내 나는 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세월이 65년이었던 정순왕후.

윤석화는 역시 능수능란했다. 500여 년이라는 시간은 그녀에 의해 무색해졌다. 별다른 장치가 없는 넓디 넓은 무대를 ‘소복을 입은 머리 희끗한 늙은이’ 한사람이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난 15일 함안문화예술회관에서는 ‘함안 아라제’를 기념하며 윤석화의 모노드라마 <영영이별 영이별(연출 임영웅)>이 공연되었다. 오후 5시와 8시 두차례 공연 모두 객석은 완전히 채워졌으며 뜨거운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시종일관 고요하게 진행된 연극이었기에 관객들의 관람 태도가 그 어느때보다 중요했다. 이런 점에서 함안 군민들은 ‘1등 배우’를 무대에 세워놓고 ‘1등 관객’의 면모를 보여줬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공연의 시작은 순조롭지 못했다. 연극이 시작된 지 5분 정도 지난 시점에 객석에서 플래시는 터지지 않았으나 사진 촬영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윤석화는 돌연 “죄송합니다. 다시 해야할 것 같습니다”라며 고객을 숙이고는 표표히 다시 무대 뒤로 사라졌다. 연기자로서의 자존심과 관객을 휘어잡는 능력의 단면을 보는 듯했다.

500여 년의 시간차를 한사람의 연기자가 모두 감당하기엔 벅찰 법도 하다. 그러나 윤석화는 분명 어떤 ‘마성’을 지닌 연기자임에 분명한 것 같다.

피를 토하듯 내지르는 절규하는 장면이나 정수년의 경쾌한 해금 연주에 맞춰 ‘염색 일’을 하는 활기찬 모습에서나 정순왕후라는 구체적인 인간상이 발현되고 있었다. 김별아 원작 소설의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문체를 윤석화의 ‘몸’이 온전하게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세요 당신, 더는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거예요. 아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하는 정순왕후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단종을 기다리게 했던가. 해답은 이렇다. “내게 죽음을 요구하는 세상의 눈초리가 따가워질수록 나는 더욱 이 불가해한 삶을 끝까지 견디고 싶었습니다.”

공연도중 미세하기는 했으나 ‘노래자랑’행사장에서 소음 아닌 소음이 전해졌다. ‘아라제’라는 축제의 유기적이지 못한 행사 진행은 ‘옥에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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