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몰이, 그 숙명을 위한 힘겨운 ‘영역표시’

역시 귀신은 귀신들이다. 자신의 재산과 가문을 거덜 낸(거덜냈다고 믿는) ‘신갑문’을 기다리는 ‘남부자’의 혼령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삼승할망’이며 ‘변소각시’며 ‘성주신’ 등 각종 ‘가신’들은 30년이라는 세월동안 ‘흉갗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석에 불이 꺼지고 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이들 귀신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귀신으로서 응당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흉가 곳곳을 유영한다. 마치 생존을 위한 동물들의 ‘영역 표시’와도 닮았다. 인간의 자리에서 보자면 죽은 것들의 생존본능은 부질없는 것이며 언어도단이다. 그래서 이들 귀신들의 움직임에는 ‘해학과 슬픔’이 공존한다.

역시 ‘연극쟁이’는 ‘연극쟁이’들이다. ‘창원극단 미소’가 경남 연극제 기간동안 김해문화의 전당 대극장(마루홀)에서 선보여 ‘장려상’과 ‘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는 <흉가에 볕들어라>라는 작품이 창원의 ‘연극사랑창원아트홀’이라는 ‘작은 극장’으로 옮겨져 공연되고 있음에도 관객들에게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 미소(대표 천영형)는 ‘창원고향의 봄 축제’동안(23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오후 4시와 7시에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지난 8일과 9일 4차례의 공연을 마친 상태.

이들은 ‘소극장 공연 활성화’라는 연극 생존을 위한 숙명과도 같은 과제를 풀기 위해 무대 위에서 힘겹게 ‘영역 표시’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역 표시’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몸짓이기에 아름답기 그지없다. 끝간데 모르는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이 작품은 ‘흉갗라는 공간에 갖가지 인간 군상을 배치함으로써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룻밤 사이에 ‘남부자네 집’에서 8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으로 인해 인간은 미쳐버리고 귀신은 귀신이 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사건의 근원에는 ‘사람의 욕망’이 꿈틀댄다.

1948년 경상도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걸쭉한 사투리가 극의 묘미를 한층 더 배가시킨다. 대극장 공연에서 ‘사투리 전달’이 잘 되지 않았던 약점을 ‘소극장’이라는 공간이 보완하고 있다.

또한 12명이라는 출연진이 말해주듯 꽉 찬 무대에서 내뿜는 열기는 객석의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파북숭이 역의 전치우나 삼승할망 역의 박계랜 뿐 아니라 출연진 모두의 고른 연기력이 돋보인다.

다만 ‘해학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된 듯한 ‘슬랩스틱 코미디’는 극의 흐름을 끊어 놓는 듯해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흉갗에서 하염없이 ‘파북숭이’를 기다리는 ‘남부자’의 혼령처럼 연극사랑 창원아트홀에서는 극단 미소의 배우들과 스태프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과 함께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공연은 23일까지. 문의 (055)264-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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