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열강에 우호적…‘냉철한 인식’ 아쉬워

일본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잊을 만 하면 불거지는 일본의 역사왜곡 움직임이 얼마 전 또 발생했다. 일본 교육당국이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라고 가르치자”는 역사왜곡 사주를 공공연히 해댄 것이다.

1945년 해방을 맞은 지도 어언 60년이 지났건만 ‘한국-일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앙금을 안은 채 ‘동북아 시대’를 함께 걸어가고 있다.

   
1945년에서 50년 전으로 역사의 필름을 돌려 그 ‘앙금’의 근원을 파헤친 뮤지컬 <명성황후>가 지난 7·8일(금·토) 김해문화의 전당 마루홀에서 공연되었다. 해방 되기 전 50년 전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 지를 밝히며, 해방후 60년이 지난 현재를 다시 인식하게끔 하는 힘을 ‘명성황후’라는 아이콘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10년간 국내관객 88만명이 관람했고 미국 브로드웨이 진출 등 각종 기록을 쏟아내며 롱런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역시 김해에서도 매 공연 만원을 이루며 관객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집단 군무가 압권인 ‘무과시험’과 ‘궁중 연희’장면, 그리고 전통 굿에 기반한‘수태 굿’ 장면 등은 한국의 ‘선’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또한 미우라 일당이 무대 뒤편 핏빛 조명 아래서 ‘여우사냥(명성황후 시해 작전명)’을 계획하는 모습과 무대 앞에서의 평화로운 궁중의 모습이 대비됨으로써, 안일했던 정세 파악으로 인해 천인공노할 만행을 방기한 역사적 수치를 되씹어 보게도 했다.

그러나 ‘감동’을 이끌기 위해 연출된 장면에 안일한 역사인식이 간간이 드러나기도 했다. 가령 러시아·미국·영국·프랑스 등의 서구 열강에 대한 지나치게 우호적인 묘사는 일본을 ‘나쁜 놈 중에 제일 나쁜 놈’으로 느끼게는 했으나 당시의 냉혹한 국제정세에 대해서는 눈감아 버리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사실 서구열강의 탐욕은 ‘일본’이라는 ‘제국주의 새끼’를 키운 원조가 아니었던가.

<주간조선>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를 다뤄 화제가 되었던 창작뮤지컬 <요덕 스토리>를 <명성황후>의 뒤를 잇는 ‘참여형 뮤지컬’이라 이름 붙인 바 있다.

뮤지컬로서의 예술적 성취도 면에서는 <명성황후>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게 중론이지만, <요덕 스토리>의 흥행을 위해 수많은 지면을 동원한 <조선일보>에서 ‘참여형 뮤지컬’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건 ‘냉철한 인식의 부재’라는 공범자 의식을 교묘히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한국의 정서와 역동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온 <명성황후>. 김해 공연을 뒤로 하고 5월부터는 중국 순회공연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10년 넘게 끊임없이 다듬고 업그레이드 해온 저력이 있는 만큼, 다음 지역 공연에서는 한층 더 깊어진 <명성황후>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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