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나 예술작품이 자동차나 냉장고와 다른 점은 뭘까. 그건 혼(魂)이 담겨 있는 정신적 산물이라는 거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공산품의 경우에도 그 제조·판매업자가 사회적 지탄을 받는 짓을 했다면 상품의 불량 여부와 관계없이 불매운동감이 된다. 하물며 문학·예술작품이라면 그 작가의 삶과 철학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미 진리로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작품과 작가는 별개’라는 주장은 자신의 삶과 철학에 자신이 없는 일부 사이비 작가들의 천박한 억지논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그런 억지가 통하는 것 같다. 유명하기만 하다면 그가 민족을 팔아먹었든, 인권유린과 탄압에 앞장섰든 별 문제 삼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옛날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해도 역사와 사람에 대한 평가에서 포폄(褒貶)의 원칙이 뚜렷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가 득세해온 역사를 겪어오는 과정에서 선악구분과 포폄이 사라진 것은 물론 적반하장으로 기회주의자들을 옹호하기 위한 궤변과 억지까지 난무하게 됐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국과 민족을 배신했든 말든 그의 시가 좋고, 노래가 좋고, 그림이 좋은 것까지는 누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삶에 대한 역사적평가가 먼저

그런 사람들은 자기 돈으로 이완용이나 박정희의 서예작품을 구입해 안방에 걸어놓고 날마다 감상하면 될 일이다. 이은상의 시조가 좋고, 조두남의 노래가 좋아 날마다 낭송을 하든, 감상을 하든 관여할 바 아니다.

문제는 자기의 그런 취향을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 유명인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이 하도 많아서 하는 말이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장장 6년 동안이나 마산에서 이은상·조두남 기념관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이 빚어졌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야 했다.

나도 바로 그 일 때문에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무려 1년 동안 법정을 오가는 비용을 치러야 했다. 결국 법원은 우리의 손을 들어줬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허비한 시간과 비용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지루한 마찰을 빚었던 이은상·조두남 기념관 건립 논란도 최종적으로는 ‘시민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결국 행정기관이 시인과 음악가의 ‘유명세’만 믿고 그의 삶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한 채 무리하게 사업을 벌였다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치르게 된 것이다.

이미 지난 얘기를 왜 또 꺼내느냐면, 최근 ‘동요 산토끼의 작곡가 이일래의 테마공원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창녕에서 일고 있다는 신문보도를 봤기 때문이다.

기념관 조성 신중해야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동요 <산토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 노래를 지은 사람이 이일래라는 마산출신의 교사라고 하면 꽤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이일래 선생의 기념관 등을 곁들인 복합적인 테마관광코스를 개발하자’는 제안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직 그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나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논란 끝에 개관한 ‘마산음악관’에도 이일래에 대한 전시물이 있다. 하지만 마산 출신의 여러 음악가들 속에 그가 포함돼 있는 것까지 문제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이나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 자체로 이일래는 ‘후세가 본받아야 할 인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자료 중에는 이일래가 해방 직후 지역 우익단체의 효시가 된 ‘한민회’의 간부로 참여했고, 미군정 하에서는 미군의 첩보부대인 CIC 통역관까지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한민회의 역할, 그리고 당시 그가 CIC 통역관으로서 어떤 노릇을 했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포폄이 필요하다. 물론 일제 말기 그의 행적과 해방 후 한국전쟁기와 3·15마산의거, 5·16쿠데타와 유신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그가 어떠한 사회적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도 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단지 유명한 동요의 지은이라는 이유만으로 추앙하고 기념하는 일에 세금을 쓰려 했다간 또다시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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