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에겐 믿음주고 스스로는 냉정해져라

1998년 9월 29일, 새벽 OB 선수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한 큰 사고를 당했다. 사직 롯데전을 마치고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로 이동하다가 선수단 2호차가 광양근처에서 빗길에 미끄러져서 전복당하는 사고를 당했다.

   
지인들까지 화들짝 놀라 “다친 데는 없느냐”며 너나 할 것이 없이 선수단의 안부를 묻는 와중에도 2군 코칭스태프는 걱정도 안됐는지 침묵만 지켰다. 김인식은 2군 코칭스태프의 무관심을 동료애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람을 치는 데 익숙지 않은 그였지만 시즌이 끝난 뒤 독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얼마 전 출판된 <김인식 리더십>(고진현 지음)의 일부 내용이다. 일반 야구팬들로서는 상상이 잘 되지 않는 대목이다. 사람 좋기로 소문 난 김인식 감독이 1·2명도 아닌 대규모 코칭스태프를 자르는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니…. 그러나 김인식은 누구보다 냉정했다.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고 최소한의 동료애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을 조직에 놔둘 이유는 없었다.

동료애없는 코칭스태프

‘믿음의 야구'를 펼치고 사람을 아끼는 김인식 야구의 또 다른 면모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김인식의 ‘믿음'은 대단히 절제돼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을 무한히 믿지만 결코 무턱대고 믿지는 않는다. ‘사람 좋으면 꼴찌(Nice Guys Finish Last)’라는 메이저리그 명언과 다르게 사람 좋고도 험한 야구판에서 명장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김인식은 분명 따뜻한 사람이다. 지난 해 한화 돌풍의 중심에 섰던 김인철, 지연규, 조성민 등은 김인식의 배려와 가르침 덕에 다시 설 수 있었다. 물론 성공 가능성이 보였기에 품안에 넣은 것이었지만 사실 처음에는 무모한 선택이라는 말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가능성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다가섰는지도 모른다.

김인식의 ‘믿음'은 놀라울 정도로 매번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는 다른 지도자들이 꼭 본받아야 될 부분이다. 믿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진실 되게 대하고 애정을 가지면 선수들이 달라지고 팀도 살아 움직인다. 물론 무조건 믿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사람을 아끼고 믿되 그것을 절제할 수 있는 심지, 그것이 바로 김인식표 ‘믿음'이다.

   
과감히 잘라 ‘조직 융화’


김인식 감독을 표현하면 대개 ‘믿음' ‘인화' 등의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자칫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 정도이다.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성적이다.

아무리 선진 야구를 추구하고 좋은 인품을 갖춰도 성적이 나쁘면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없다. 김인식 감독은 그런 면에서 성품과 실력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지도자라 할 수 있다.

김인식은 지금까지 2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김응용(현 삼성 라이온즈 사장) 전 감독의 10회 위업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두 감독이 맡았던 팀들의 전력을 고려하면 단순 비교는 어렵다. 하나의 예로 김인식이 95년 OB(현 두산)를 맡았을 당시 팀은 만신창이 상태였다. 전해 사상 초유의 선수단 집단 이탈 사태로 팀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그러나 김인식은 팀 분위기를 추스르고 선수들에게 이상적인 역할 분담을 맡겨 승승장구했다.

조성민 등 ‘재활’ 이끌고

특히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역전극이 백미였다.

OB는 8월 말만 해도 LG에 6게임 뒤진 2위였다. 정규시즌 1위는 사실상 물 건너 간 분위기였지만 마지막 1달 동안 20승 7패의 호성적으로 결국 1위를 탈환하고 기세를 몰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또 98년에는 거짓말 같은 시즌 막판 8연승으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했던 해태를 젖히고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김인식은 지난 해 한화에서도 무서운 집중력으로 팀을 4강 대열에 합류 시켰다.

6월 4일부터 12일까지 첫 번째 9연전에서 8전 전승(1경기 우천 취소)을 하더니 8월 13일부터 21일까지의 9연전에서도 6전 전승(3경기 우천취소)을 기록했다. 남들은 죽음의 9연전이라 했지만 김인식에게는 기회였고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사례에서 보듯이 김인식 야구의 특징 중 하나는 승부처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투수들의 역할 분담과 교체, 선수의 체력 안배 등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있다. 두산이 ‘미러클 두산'으로 지금까지도 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 주고 한화가 전력 이상의 힘을 보이는 것은 김인식 감독의 믿음 이전의 뛰어난 용병술이 있기에 가능했다.

WBC로 국민감독 ‘부활’

이번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를 통해 김인식 감독은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기적 같은 4강 진출, 적시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는 안목과 어눌한 말투에서 나오는 친근한 이미지, 모든 영광을 선수에게 돌리는 겸손까지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그간 한국 야구 역사에서 김인식 같이 국민적 관심을 받은 지도자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김인식 열풍은 대단하다. 방송사들은 김인식 감독을 조명하기 위해 다각도로 방안을 짜내고 있고 서점가에서는 ‘김인식 리더십'을 다룬 책자가 널리 팔리고 있다.

야구 서적들의 경우 대부분 출판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다.

김인식 감독은 최근 다시는 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역량이 뛰어난 후배들이 많아 자신이 굳이 앞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감독도 지금의 김인식 같은 국민적 성원을 받지 못했고 받기도 힘들다는 점에서 김인식 감독이 다시 대표팀을 이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한국 야구를 다시 쓴 김인식의 업적은 그만큼 대단했다.

/유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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