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항쟁 때 목숨을 잃은 열사가 12명이나 돼 한 열사를 지칭해 거리 이름을 제정하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요? 그럼 기미년 3·1운동 때 목숨을 잃은 열사가 한 명 뿐이라서 유관순 열사를 기리나요?”

   
지난 3월 15일 인터넷 도민일보(http://www.idomin.com)의 ‘마산의 아들이 잊히고 있다’는 기사에 달린 한 누리꾼의 댓글이다. 유관순 열사와 김주열 열사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사실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죽음이 없었다면 3·15마산의거가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킨 4·19로 연결될 수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이란 있을 수 없다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그의 주검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앞서 3월 15일 경찰의 발포에 숨진 다른 열사들도 ‘폭도’나 ‘용공분자’로 매도돼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60년 4월 11일 최루탄이 그의 눈에 박힌 참혹한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시위는 이미 ‘완전진압’돼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구절절이 이유를 댈 필요도 없이 김주열 열사는 이미 ‘3·15와 4·19의 상징'이다. 이건 마산시에서만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 모든 국민이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법에 의해 설립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도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열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대의 불꽃’ 시리즈 책자의 일곱 번째로 <김주열>을 발간했다. 만일 이것도 마산시의 논리에 따른다면 ‘3·15 항쟁 때 목숨을 잃은 열사가 한 두 명이 아닌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다른 열사와 형평성에 어긋난 짓’을 한 셈이 된다.

마산시는 김주열이 불편한가

백번 양보하여 마산시의 신중함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마산 출신의 유명한 문화예술인이 한 두 명이 아닐진대’, 유독 노산 이은상만 추켜세워 거리 이름도 ‘노산로’를 만들고, 동네 이름까지 ‘노산동’을 만드는가 하면, 시민의 날 축제 이름까지 이은상의 노래 이름을 딴 ‘가고파 축제’로 하는 까닭은 뭔가. 그것도 모자라 작년에는 돝섬에서 열리는 국화축제 이름까지 ‘가고파국화축제’로 바꾸고, 공원이름도 ‘노산공원’으로 짓는가 하면, 3·15의거 기념비 옆에는 이은상이 어릴 때 물을 떠먹었다는 우물까지 복원시켜 ‘은상이샘’을 만든 이유는 뭔가.

그러면서도 김주열 열사에 대해서만은 민간단체가 시신인양지 표지판을 세우고 흉상을 만들 때 마산시는 철저히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비록 시민의 저항에 부딪혀 좌절되긴 했지만 이은상기념관까지 혈세로 밀어붙이던 마산시가 3·15와 4·19의 상징인물에 대해서는 이토록 인색하게 굴어온 이유가 뭘까.

혹시 그동안 지역사회를 지배해온 기득권세력과 마산시장이 독재정권을 몰아낸 김주열을 아직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독재정권에 철저히 부역해온 이은상의 삶을 흠모하며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 김주열이 전라도 출신이어서 싫어하는 걸까. 전라도 출신을 경남에서 기념하고 계승하면 경상도의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열사여,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래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지역감정’이 희석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60년 당시 마산시민들은 아무도 김주열의 출신을 따지지 않고 ‘마산의 아들’로 품어 안았다. 오히려 멀리 전라도에서 마산까지 유학 온 김주열의 억울한 죽음을 한결같이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의 시신이 떠오른 날 한마음으로 마산시민이 봉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주열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도 이런 마산시민의 뜨거운 사랑에 고마움을 담은 편지를 썼다.

“자식하나 바쳐서 민주주의를 찾는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남은 삼형제 다 바친들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중략) 마산시민 여러분의 그 거룩한 뜻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 자식은 신선이 되어 올라갔을 겁니다. 마산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그렇다. 21세기 김주열의 의미는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의 상짱이다. 60년 마산과 80년 광주를 이어주는 오작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아직도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김주열은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언제쯤 다시 김주열을 마산시민의 따뜻한 품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까. 열사여!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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