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예산의 구 여권 선거자금 지원파문과 관련, 여권이 8일 `확전 자제'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극한대립으로 치닫던 정국이 고비를 맞고 있다.



물론 여야는 이날도 선거자금 수사를 둘러싼 공방을 이어갔으나 상호공세의 `독기'가 다소 순화되는 기미를 보였다.



여권의 이같은 움직임은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상대당에 대한 불필요한 공세로 감정이 더욱 격화되고 정국경색이 심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수사가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의 완강한 함구로 김씨와 한나라당 강삼재 부총재 선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여권 핵심 관계자는 “정부여당은 책임있는 말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검찰수사에서 확실히 밝혀지지 않을 것을 정치적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아들 현철씨는 물론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 쏠리는 의혹도 김씨의 함구에 따라 확증이 어려운 상황에서 안기부의 국가예산 횡령사실 자체에 대한 진상만 규명하면 되지, 이를 정치적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6개월간 수사가 진행되면서 계좌추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돈을 받은) 의원들을 비롯한 관련자들은 거의 100% 알고 대비책을 강구했을 것”이라고 말해 지금까지 드러난 김기섭 전 차장과 강삼재 의원 이상 `윗선'으로 수사가 확대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 이번 검찰수사가 표면화될 때부터 여권 일부 핵심 관계자들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당시 신한국당 대표를 지낸 김윤환 민국당 대표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었으며, 김덕룡 의원도 총선자금 부분에선 별다른 혐의가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덕룡 의원의 경우 95년 6·27 지방선거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으로서 200여억원의 안기부 예산을 집행한 혐의를 받고 있으나, 검찰은 아직 지방선거 부분에 대해선 계좌추적을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점으로 볼 때 여권은 당초 96년 총선자금에 초점이 맞춰졌던 검찰수사가 95년 지방선거나 97년 대선으로까지 확대돼 여야가 전면대결의 파국양상을 맞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5일 청와대 만찬에서 “정말 내키지 않지만 기록에 나와 있는 것을 눈감을 수도 없지 않느냐”고 말한 점은 `무한대 파헤치기'를 원치 않는 여권의 입장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여권의 이러한 확전 자제 입장엔 최근 여야정쟁이 격화되면서 정치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점을 감안하고, 특히 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양비론적 시각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이날도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국고환수 등 기존입장을 되풀이 했으나, 이회창 총재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은 자제했다.



또 청와대는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와 관련한 논평을 자제했고,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은 정쟁성 공방 자제를 위한 양당 대변인 회동을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일단 “여당이 싸움을 걸어 최정점에 달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날 저녁 김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간 회동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은 특히 내부적으로 이 회동에서 김 명예총재의 `중재'에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사건의 정쟁화는 바람직하지 않으나 엄정한 검찰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과 강삼재 부총재의 검찰출두, 관련자 처벌, 국고환수의 기존 입장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정리함으로써 여야간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따라서 여권의 `확전 자제'는 일단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를 직접적인 공격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안기부 예산이라는 국고자금을 선거에 불법전용했다는 사건의 성격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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