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마을을 지날라치면, 느티나무.떡갈나무.포구나무 등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버티고 있는 데가 아직까지는 많다. 조그만 야산이나 어깨높이 나무, 가로수 따위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면 아름답고 색달라 보인다. 하지만 늘 옆에 두고 봐 온 경우는 감흥이 다른 것 같다.
언젠가 강원도 출신 노동자와 함께 의령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차창 밖에 크고 동그랗게 정자나무가 솟아 있기에 ‘좋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대답을 재촉하니까 하는 말, “좋긴 한데, 하도 많이 본 것이라서….”

농촌 마을을 지날라치면, 느티나무.떡갈나무.포구나무 등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버티고 있는 데가 아직까지는 많다. 조그만 야산이나 어깨높이 나무, 가로수 따위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면 아름답고 색달라 보인다. 하지만 늘 옆에 두고 봐 온 경우는 감흥이 다른 것 같다.
언젠가 강원도 출신 노동자와 함께 의령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차창 밖에 크고 동그랗게 정자나무가 솟아 있기에 ‘좋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대답을 재촉하니까 하는 말, “좋긴 한데, 하도 많이 본 것이라서….”
의령 자굴산(897m)도 그럴 것이다. 자굴산 신선바위는 지리산 어느 자락의 아무렇게나 생긴 바위보다 못할 수 있고 오르내리는 길 따라 위로 뻗은 나무들은 설악산 옹이진 나무보다 처질 수 있을 것이다. 겉보기에도 밋밋하게 생겨, 높고 이름난 다른 산의 자락에 묻혀 있었으면 눈길 한 번 끌지 못하는 산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들판 너른 의령에 있다 보니까 진산(鎭山)이 되었다. 산자락마다 매달린 저수지는 골짜기 따라 펼쳐진 논밭에다 물을 대준다.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즐겨 자굴산을 찾는다. 그리 험하지 않은 산길이, 산과 이웃해 사는 사람에게는 미덕이 되었다.
내조마을 등산길 들머리, 6월 초여름 햇볕이 따갑다. 나무들이 잘아서 제대로 된 그늘이 없다. 땀이 흘러내리고, 그늘진 산길이 아쉽다. 하지만 10여 분만 바짝 오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딱 걷기 좋을 정도로 기울어진 산길이 곧장 이어지고, 왼쪽 등성이로는 20년 안팎은 되어 보이는 소나무와 활엽수들로 이뤄진 숲이 나란히 섰다.
그늘인 것이다. 그늘에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깔고 앉아 사과를 깎거나 도시락을 먹거나 물을 마시고 있다. 전혀 붐비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적막하다는 느낌도 주지 않는다. 그늘은 여기서부터 봉우리 바로 아래까지 이어진다.
‘오늘은 한 번도 쉬지 말고 올라볼까.’ 같은 그늘이지만 산 높이에 따라 달라 보인다. 처음에는 활엽수와 소나무가 이리저리 섞여 있지만 오를수록 소나무가 더 많아진다. 3분의 2 넘게 올랐다 싶어 돌아보니까 이제는 어느새 키 작은 활엽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내조마을에서 오르는 길을 사람들은 ‘진등’이라 하나 보다. 진등 중턱쯤에 ‘절터샘’이 있는데, 과연 땅이 펑퍼짐한 게 절이 있었음직하게 생겼다. 하지만 터가 비좁아 절보다는 단칸 암자가 있었다는 게 어울릴 듯하다. 대롱에서 떨어지는 물은 달고 시원하지만, 됫병을 채우는 데도 시간이 걸릴 정도로 양은 많지 않다.
표지판을 흘낏 곁눈으로 흘리고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표지에는 왼쪽 위로 가면 ‘바람덤’이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은 ‘신선바위’와 ‘금지샘’을 거쳐 봉우리로 오르는 길이다.
신선바위는 잔뜩 자란 수풀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금지샘은 바위 아래 숨어 있는 동굴샘인데 마실 수 없는 물이라고 한다. 병자호란 때 오랑캐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왔다가 군마에게 물을 먹이려 하자 갑자기 말라붙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믿거나말거나다. 늘어뜨려진 줄을 잡고 바위를 타야 하는 30m 정도만 지나면 산꼭대기까지는 무난히 오를 수 있다.
자굴산은 중턱이 좋아 보인다. 삼림욕 효과가 6월에 가장 뛰어나다 하니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적당한 그늘을 잡아 삼삼오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 토끼똥이 곳곳에 심심찮게 흩어져 있는 것으로 미뤄, 어쩌면 귀한 산짐승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땀이 말라 소금기가 얼굴 윤곽과 목덜미를 따라 부석거렸다. 비탈을 누비며 이제 막 무르익는 산딸기를 반 되 남짓 땄다. 오후 4시, 가시에 찔려 따갑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 그만 내려왔다.

△찾아가는 길

의령 읍내까지는 시외버스를 타는 편이 무난하다.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6시 50분부터 오후 8시 20분까지 20~30분 간격으로 의령 가는 차편이 있다. 30분이면 가 닿는다.
진주에서는 40분 가량 걸리는데 오전 6시 50분부터 오후 8시 1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배차가 이뤄진다.
자굴산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 먼저 칠곡면 내조마을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시내버스로 칠곡초교에서 내려 오른쪽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면 다시 오른쪽으로 등산길 들머리가 표시돼 있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탈 경우는 의령 읍내에서 진주쪽으로 5분 정도 가면 된다.
가례면 갑을초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는 길도 있다. 백련암에서 등산이 시작되는데, 내조마을에서는 정상까지 거리가 4.5km인데 반해 백련암에서는 2.5km 정도로 짧은 편이다. 이밖에 칠곡면 상촌 강선암에서 오르는 길도 있다.

가볼만한 곳
의령은 ‘소바’가 유명하다. 소바는 일본말인데, 의령군에서 낸 관광 안내 리플릿에도 그냥 ‘소바’로 돼 있을 정도로 토착화돼 있다. 육수 맛이 남다른 메밀국수쯤 될 터인데, 의령 사람들은 아마 소바를 ‘메밀국수’라 하면 맛이 안난다 할 것이다.
의령농협 서동지소 앞에 ‘의령소바’(055-573-2514)가 있고 ‘제일소바’(055-573-3267)도 손꼽힌다. 장터마다 있었던 국밥도 알아주는데, 사람들은 읍내에 있는 ‘종로식당’(055-573-2785)을 으뜸가는 전통 국밥집으로 꼽는다.
의령 읍내에서 창녕쪽으로 가면 정곡면을 지나 유곡면이 나온다. 유곡면 세간리에는 임진왜란 때 첫 의병장으로 의령.창녕.현풍 등지에서 빼어난 활약을 벌인 곽재우 장군의 유적이 있다.
곽재우 장군은 1592년 4월 22일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 앞 나무에 북을 내걸어 의병을 모집했는데 현고수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 나무가 남아 있다. 또 붉은 옷(紅衣)을 입고 유곡천과 낙동강을 넘나들며 왜적을 무찔러 ‘총알과 화살이 장군을 피해간다’는 불패(不敗)의 신화를 쌓았으며 임금보다 더 많이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다.
현고수가 있는 데서 길 따라 더 가면 부림면 입산리가 나온다.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가 있는데 사랑채가 초가로 돼 있다. 백산은 구한말 의신.창남.구명학교를 잇달아 세워 교육구국의 꿈을 불태운 독립운동가다.
3.1운동 때는 독립선언서를 등사해 3월 14일부터 사흘 동안 읍내에서 시위를 일으켰고 31년 대종교에 입교, 33년 발해의 서울인 동경성에 발해농장과 학교를 세워 동포들의 생활안정과 함께 민족의식 고취를 꾀했다. 1885년 태어난 백산은 42년 일제에 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43년 풀려났으나 해방을 보지 못하고 고문후유증으로 만주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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