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희 성추행 사건’과 관련, 정치인과 언론인의 ‘술자리 문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주요 당직자들, 그리고 <동아일보> 임채청 편집국장과 주요간부·기자들이 술자리를 가진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불거진 바로 다음날(2월 28일) 권범철 화백이 <경남도민일보>에 그린 만평은 압권이다. 권 화백은 여기서 동아일보와 한나라당을 쇼트트랙 선수로 표현해 ‘서로 밀고…밀어주다…’ 결국 사고를 치게 된 경위를 풍자하고 있다.

그날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이명순)은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단순한 ‘성추행 사건’이 아닌 ‘신권언유착이 낳은 수캄로 규정했다.

인터넷신문 <민중의 소리>는 그날 동아일보와 한나라당의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여성도우미’의 식사 시중 비용을 포함해 1인당 14만 원짜리 밥을 먹고 폭탄주가 오가는 ‘2차’를 갔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서도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성명을 통해 대부분의 언론이 부적절한 술자리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은) “제1야당과 일부 보수언론 간의 신권언유착과 그 부작용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의 지적대로 언론이 술자리 자체를 제대로 문제삼지 않은 이유는 뭘까? <민중의 소리> 보도처럼 다른 언론사 간부들도 <동아일보>처럼 한나라당의 접대를 받았기 때문일까?

정치인과 만날 수는 있지만

내가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언론계의 ‘관행’으로 볼 때 그랬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본다.

‘관행’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언론인과 정치인·관료의 식사나 술자리는 흔한 편이다. <경남도민일보> 창간 후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나는 경남 언론계의 풍토를 도민일보 창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도민일보 창간이 지역 언론계의 여러 ‘관행’에 미친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고백컨대 98년 폐간된 <경남매일> 시절만 해도 이번 <동아일보> 정도의 술자리는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룸살롱’에서 정치인과 언론인이 접대부를 불러놓고 질펀한 술자리를 갖는 일도 적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총선이나 지방선거가 끝나면 언론사의 한 부서가 그런 회식자리를 열어놓고 당선된 정치인을 불러 술값을 계산하게 하는 일까지 있었다.

특정한 언론사 관계자와 정치인·관료가 만나는 그런 자리도 있지만, 기관의 장과 출입기자들이 술자리를 갖는 경우도 잦다. 요즘도 종종 그런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내가 아는 몇몇 선배기자들은 자신과 특별히 친한 기업인이나 관료, 또는 정치인을 만들어놓고, 그를 ‘스폰서’ 삼아 후배나 동료들에게 고급 술집에서 술을 사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혐오스러웠던 게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술 잘 사주는 선배를 후배들이 잘 따르는 모습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선까지…

도민일보 창간 후 그런 모습은 싹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인·관료와 언론인의 만남 자체는 사라질 수 없다. 현실적으로 모든 취재를 ‘공동 기자회견’ 형식으로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만남은 경계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기자윤리실천요강에도 ‘향응’을 절대 거부하도록 돼 있지만, 그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이냐는 애매하다.

그래서 도민일보는 아예 저녁 만남을 갖지 않는다. 아주 불가피한 경우 저녁식사 약속을 할 경우라도 ‘2차’는 절대 가지 않는 걸 기준으로 삼고 있다. ‘2차’를 가게 되면 ‘불가원 불가근(너무 멀어도 안되고, 너무 가까워져도 안된다)’이라는 취재원칙이 깨지게 되고, 서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언론인의 비공식 만남 자체는 뭐라 할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에도 <동아일보>의 이번 일은 지나쳤다.

아무리 서울 물가가 비싸다곤 하지만 14만 원 짜리 식사라니.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워져 버린’ 한나라당과 서울지역 족벌·재벌신문들의 관계를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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