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소중함 아는 똥치들의 자기표현


날이 새면 전쟁터인 월남으로 떠난다. 술집작부 ‘똥캄인 ‘빠꿈이’ 미자는 ‘한코 줄테니’ 나오라지만 ‘나’는 나가지 않는다. 아침, 출동명령에 따라 트럭에 오른 병사들은 잇달아 군가를 불러댄다. 트럭은 술집이 늘어서 있는 ‘몰개월’의 거리를 빠져나간다.
‘안개가 부연 몰개월 입구에서 나는 여자들이 길 좌우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꽃이며 손수건이며를 흔들고 있었다. 대열은 천천히 나아갔다. 여자들은 거의 한복 차림이었다. 뛰어서 쫓아오는 여자들도 있었다. … 나는 트럭 뒷전에 가서 상반신을 내밀고 소리질렀다. 미자가 치마를 펄럭이며 쫓아왔다. 뭐라고 떠드는 것 같았으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얀 것이 날아와 떨어졌다. 그것을 주워들었을 적에 미자는 벌써 뒤차에 가려져 보이질 않았다. 여자들이 무엇인가를 차 속으로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다.’
미자를 처음 만난 것은 장맛비가 내리는 밤 동료와 함께 훔친 군화 3켤레를 들고 술 마시러 나가서였다. 미자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속옷만 걸치고 엎드린 채 시궁창에 아랫도리를 담그고 있었다.
‘나’는 시궁창에 처박힌 모습에서 욕정을 느꼈다. 미자가 기거하는 ‘갈매기집’으로 갔다. 미자가 술을 마시고 엉망이 된 것은 애인으로 삼았던 ‘군바리’ 하나가 남의 나라에서 전사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자가 뜬금없이 면회를 왔다. ‘나’는 밤늦게 지시대로 담치기를 해서 갈매기집에 간다. 미자는 남의 술상에 들어갔다가 뺨을 세게 얻어맞고 중사의 팔을 물어뜯는다. 난감해져 돌아나오는 나를 쫓아온 미자는 “증말 그러기야.” 따지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나는 논가에 데리고 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씻어준다.
‘우리는 같이 술청 뒤꼍에 있는 관만한 방으로 스며들었다.’ “초가 다 타면 자요.” 초가 잦아들자 ‘나는 은근히 조바심이 나서 빠꿈이를 건드렸지만 이상하게도 손짓만 그럴 뿐 몸에 도통 기별이 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빠꿈이를 먹지 못했다. 낯을 씻길 때부터 먹지 못하게 무관한 사이가 된 것이다. 식구를 먹어주는 놈이 어디 있겠는가.’
월남에 가기 위해 탄 트럭에서 ‘내’가 빠꿈이에게 받은 것은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뚝이 한 쌍’이었다. 당시는 아직 어렸던 모양인지, 남지나해 바다 속에 던져버렸다. 몰개월도 같이 잊혀졌을 것이다.
빠꿈이는 병사들을 상대로 전쟁 같은 삶을 살고, 나는 삶이 곧바로 전쟁인 운명이 되어 월남에 간다. 둘 사이의 일시적이지만 혈연적 사랑을 다룬 단편 ‘몰개월의 새’는 월남전이 끝난 뒤인 76년 발표됐다. 60년대에 해병대 소속으로 월남전을 겪은 작가 황석영이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이들의 자기표현’임을 눈치채기까지 10년 세월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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