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을 맞아 학부모들에게 소원을 말하라면 한결같이 ‘우리 아이들 모두가 건강하고 공부 잘하는 것’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부모들의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질지 걱정이다. 왜냐하면 학교가 체육교육의 포기나 다름없는 선택과목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제5차 교육과정(91~96년) 시행 당시만 하더라도 주당 3시간 이상으로 편성돼 있었던 고등학교 체육은 현행 제6차 교육과정(97~2001년)에서는 1시간이 줄어 든 2시간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도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는 2002년부터는 고등학교 2·3학년에 한해 주당 최소 2시간씩 체육수업을 듣는 대신 체육·미술·음악을 통틀어 예·체능 중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 하나를 2시간 이상만 이수하면 되게 됐다.



그나마 있는 체육시간도 각종 편법을 동원해 축소하거나 자습으로 대체하는 마당에 이제는 제도적으로 단 1시간도 보장받을 길이 없어진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의 학교는 아파트 숲 속에서 100m 달리기 직선 코스도 나오지 않는 좁은 운동장의 학교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열악한 학교환경에서 ‘1교 1교기 운동’이라는 엘리트 체육교육으로 전교생이 사용할 운동장을 선수들에게 빼앗기고 좋아하는 축구나, 야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다.



“운동장으로 다닌다고 체육선생님에 실컷 기합을 받았어요.” 야구나 축구를 교기로 지정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운동장 출입조차 통제 당한다. 체육성금까지 내면서 전교생이 사용할 운동장을 몇 사람의 선수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만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체육선생은 선생도 아닙니다. 시험 때가 되면 학교장은 은근히 자습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인문계 학교의 예·체능 교과는 기타과목(?)이 된 지 오래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수학능력고사에 출제되는 지식을 암기하기 바쁜 수험생들에게 체육이란 오히려 사치다. ‘심신의 단련을 통한 건강한 정신을 기르는’ 체육교육의 목표는 교육과정 속에나 있다.



운동장의 독점만이 아니다. 전교생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야 할 학교발전기금이 몇 사람의 선수를 키우기 위해 투입되고 있다. 오히려 전교생들이 체육성금까지 내야 ‘1교 1교기 육성’이 가능하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훈련을 위해 필요한 예산이 초등학교 경우에는 한푼도 책정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고등학교에서조차 20년 전에 책정된 예산 그대로 학교 당 3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1만2800여개의 학교에 11만1000명의 선수들이 교기를 선양하기 위해 뛴다. 물론 그들은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정규수업은 하지도 않지만 할 수도 없다. 체육선수들이 해외에 나갈 때 영어로 기록하는 간단한 인적사항조차 적지 못했던 일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수업도 평가도 받지 않는 선수들은 학교마다 학칙에 의해 인정점수를 받고 졸업한다. 선수들은 전국단위의 시합에서 우승을 할 경우 대학에 진학하는 특혜가 주어지기 때문에 경기에서의 우승을 위해 교실에서 정규수업을 받는 학교는 거의 없다.



선수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직 세계를 제패하는 스타가 되고 모든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직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훈련받은 모든 체육선수가 스타가 되지 않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의 체육교육은 대중체육을 포기한 지 오래다. 초등학교로 갈수록 체육교육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체육전담 교사 1명당 학생수가 무려 1387명 꼴이다. 대부분이 여교사들인 초등학교에서는 예·체능 전담 교사가 있지만 체육 전담교사의 정원을 채우고 있는 학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자연히 여선생님은 체육을 힘들어하고 체육수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체육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



엘리트 선수를 양성하는 비교육적인 체육교육은 중단되어야 한다. 체육교육이 대중체육으로 바뀌지 않는 한 국민건강을 위한 체육의 생활화는 기대할 수 없다. 전교생의 건강증진 차원에서도 그렇고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선수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엘리트체육교육을 중단하는 것이 체육교육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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