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임·노유정 “한상궁 뛰어넘는 장금이 되길 바라요”

인터뷰해야 한다는 말에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튼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은 모양이다. 양식·일식 조리사 자격증을 1년여 만에 거머쥔 11세 소녀 노유정(진주 망경초교 4년).

어른들도 2년 내에는 따기 어렵다는 요리자격증을 한번에 2개나 따자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가 터졌다. 노양을 만난 날도 곧이어 방송출연을 해야 한단다. 천진난만한 표정 속에 피곤함이 묻어난다.

▲ 경남 제1호 조리기능장 정계임씨와 최연소 조리사자격증 소지자 노유정양
10분쯤 지나 멀리서 차 한 대가 들어서자 유정이 얼굴에 화색이 돈다. 경남 제1호 조리기능장 정계임(49·진주 일신요리학원 원장)씨다. 진주 개천예술제에서 ‘2500인분의 비빔밥 시식회’를 연 주인공이기도 하다.

정씨를 보자마자 유정이의 얼굴이 환해진다. 재잘거림이 이어진다. 노유정양과 그의 스승인 정계임씨는 마치 다정한 모녀와 같다.

조리학원서 만나 모녀처럼 지내는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의 ‘맛있는 인연’은 지난 2004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정이는 진주에서 횟집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연스럽게 음식 만드는 것을 배웠다.

우연히 어머니 천영임씨가 다니던 조리학원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스승인 정계임씨를 만났다. 이후 유정양은 정씨를 엄마처럼 따랐고 정씨는 교수자리도 마다하고 유정양에게 요리법을 전수했다.

유정양이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 유정양이 요리와 수학의 공통점을 짚었다.

“기초에서 계속 조합하면 점점 더 재밌어지는 것이 수학이잖아요. 요리도 그런 것 같아요.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너무 재밌어요. 학원에서 요리하다보면 집에 가는 것도 잊어먹을 때가 많아요.”

그의 스승인 정계임씨는 ‘청출어람’을 바란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제자를 만들기 위해 외국 요리연수마다 유정이를 데리고 다닐 정도다.

   

정계임씨 “타고난 끼와 노력 예뻐 아낌없이 전수”

“행여나 음식이 안 맞아 탈나거나 데리고 다니다가 사고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딜 가나 잘 적응하고 잘 먹어서 놀랐어요. 유정이는 타고난 거죠 뭐. 저도 부모이기에 유정이 같은 딸을 가진 유정이 부모님이 부러울 정도예요.”

정씨는 한식은 손맛이 중요해 섬세해야 하고 일식은 생선요리가 많아 신속하고 대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타고난 미각’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요리하는 사람이 담배나 술을 가까이 하면 미각이 둔해질 수밖에 없어 치명적이다.

반면 어릴수록 때묻지 않은 미각을 가지고 있어 유정이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는 유정이가 이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데다 아이답지 않은 ‘근성’이 대단해 아낄 수밖에 없었다며 첫 만남을 되새겼다.

“식품위생법규 등 전문용어가 많아 이론공부는 어른들도 몇 번 고배를 마십니다. 유정이는 학교 다니면서 밤샘을 하면서 공부를 해서 2번만에 자격증시험에 붙더군요. 열심히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유정이가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으면 꼭 데리고 다닙니다.”

‘요리의 고수’들이 선택한 음식은 복어다. 유정이는 올 3월 조리자격증 최고봉이라 불리는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할 예정이라 다양한 복어를 맛보고 있는 중이다.

노유정양 “복어·제빵 등 요리자격증 완전정복 꿈”

사천에 있는 삼화복집을 찾았다. 복껍질 무침·복어 속껍질·내장 등 유정양이 어른들도 꺼릴 만한 부위를 거침없이 맛본다. 일단 디카폰으로 하나 하나 찍고 한줌씩 먹어본다.

복국이 나오자 국물부터 얼른 들이켠다. “야채 맛이 조금 더 강하네요. 고기의 풍부한 맛이 아직 덜 배어서 그런가봐요.” 음식 맛을 논하되 탓하진 않는다. 모든 조리사가 추구하는 맛이 다 다르기 때문이란다.

스승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복어회를 썰 땐 바닥이 다 비칠 정도로 투명해야 한단다. 회를 복국에 살짝 데쳐서도 먹어보라고 유정이에게 한 입 넣어준다. 두 사람의 전생이 궁금할 정도다.

두 사람은 식성도 비슷하다. 유정이는 쌈 싸 먹을 땐 꼭 멸치젓갈을 찾고 김치도 썰어 먹지 않고 쭉쭉 찢어 먹는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시래기국이다. 시래기국맛의 비법을 묻자 국물 우릴 때 멸치 똥을 꼭 빼야 쓴맛이 없단다.

정씨는 우리 향토음식 전문가다. 현재 진주향토음식문화연구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마다 맞는 음식이 있습니다. 차가운 몸을 가진 사람이 찬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게 마련이죠. 지금 누구에게나 맞는 음식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닮은 두 사람. 복어조리기능사에 이어 칵테일·제빵자격증도 완전정복 해보겠다는 유정양과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열정은 20대 같은 정계임씨는 스승과 제자사이이자 근성이 돋보이는 요리계 맞수다.

사진/박종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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