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의 ‘촌지’ 중에서도 이른바 ‘안전빵’이라는 게 있다. 뒤탈이 날 위험이 없는 돈봉투를 뜻하는데, 검찰청장이나 법원장, 경찰청장과 서장, 도지사와 교육감, 시장·군수 같은 기관장들이 주는 돈이 대개 그렇다.

   

반면 기업체, 그 중에서도 특히 건설업체 같은 비리나 민원과 연관성이 많은 업체가 주는 촌지는 극히 위험하다. 그 업체의 비리사건이나 민원이 터지면 취재와 보도에 직접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들통 날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빵’ 중에서도 드물게 문제가 되는 수도 있다. 10여년 전의 일이지만 심지어 대통령이 야당시절 준 촌지도 파문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

당시 검찰이 한 신문기자의 촌지수수 사실을 문제 삼아 수사를 벌이자, 해당 신문사가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어쩔 수 없이 10만원의 촌지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 돈은 1년 치 신문구독료로 입금했다는 것이었다. 이 신문사는 검찰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총재시절 기자들에게 줬던 촌지사례를 잇따라 폭로하면서 “대통령도 처벌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절 앞두고 촌지 대목(?)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검찰도 난처해졌다. 게다가 수사과정에서 실제 문제의 촌지가 신문구독료로 입금된 것을 증명하는 영수증까지 나왔다. 결국 검찰은 이 신문사와 대결에서 판정패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도 스타일을 구겼음은 물론이다.

2006년 현재에도 소위 ‘안전빵’이라는 기관장이 준 촌지가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곳이 있다. 충북 충주시장이 시청 출입기자들에게 촌지를 돌린 사실이 들통 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충주시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대전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사자인 충주시장은 ‘왜 하필이면 내 임기 때만 문제 삼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지만, 사법처리는 불가피한 듯 하다.

왜 뜬금없이 촌지 얘길 하느냐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앞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촌지와 선물이 오가는 건 물론이다. <경남도민일보>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게 ‘촌지 안받는 신문’이고, 창간 후 8년째 접어드는 지금까지 마르고 닳도록 이 사실을 알려왔지만 아직도 도민일보 기자에게 촌지를 건네는 기관이나 단체가 존재하는 걸 보면 참 질기다는 생각도 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도 벌써 2건의 선물이 택배로 배달돼 왔다. 하나는 택배 자체를 반송 처리했고, 하나는 경비실에서 받아 놔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기자회에 맡겨 복지시설에 기탁해야 할 판이다.

더이상 ‘안전빵’ 촌지는 없다

시민사회부의 한 일선 취재기자도 6개월 남짓한 기간동안 무려 여덟 번의 촌지를 사양했거나 돌려줬다는 내용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대부분 공무원이 상품권이나 현금을 건넨 사례들이었다. 그 중 한번은 잠시 손에 쥐었다가 돌려준 봉투가 상당히 두꺼웠단다. 기자들이 촌지봉투를 두고 두껍다는 표현을 쓸 경우 대략 100만 원 이상의 현금이 들었을 경우를 지칭한다. 설을 사흘 앞둔 오늘도 여기저기서 밥 먹자는 요청이 온단다.

8년의 홍보가 아직도 부족한 탓일까?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창간 초창기에 비해 언론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보도가 최근 몇 년간 거의 없었고, 충북 충주시처럼 사건화한 일도 없이 무덤덤하게 지내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남 언론계에 촌지관행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특히 올해는 5·31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충주시장의 예에서 보듯, 선거에 출마할 단체장이나 입후보 예정자가 기자에게 촌지를 건네면 곧바로 ‘선거 관련 금품수수 행위’가 된다.

‘경남도민일보 선거보도준칙’ 제12조는 “선거취재 과정에서 어떠한 경우에라도 금품과 향응을 거부하며, 그 사례를 공개한다. 또한 후보자가 금품 및 향응을 제공한 사실을 목격하거나 확인했을 경우 선거부정 감시차원에서 보도한다”고 규정돼 있다.

병술년 새해를 맞이하며 다시금 옷깃을 여미고 기자윤리를 다짐한다. 경남은 전국에서 최초로 관언유착의 고리였던 ‘계도지’를 폐지한 곳이다. 올해는 경남에서만이라도 관공서의 ‘안전빵’ 촌지가 사라지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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