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시즌이 또 돌아온다. 선거 중에서도 지방선거는 지역언론과 시민사회단체의 최대 이벤트다.

이 때쯤 각 지역신문들은 벌써부터 선거취재 준비에 들어간다. 입후보 예상자 인적사항과 사진 확보는 물론 시기별 기획아이템 준비, 선거보도준칙에 대한 점검, 취재인력과 취재팀 구성에 대한 구상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도 그동안의 지방의회에 대한 성적표를 마련하고 있거나 후보자에 대한 정책요구사항 등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키워드를 뭘로 잡느냐다. 각 매체나 단체의 정체성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가 5·31선거의 가장 큰 특징일 것 같다.

공식선거운동기간을 ‘본선’이라고 한다면, 그에 앞서 각 정당의 공천자를 결정하는 과정은 ‘예선’쯤에 해당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언론이나 시민단체는 본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선에는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비중을 두는 경우라도 각 정당의 공천과정을 뒤따라 가는 중계보도에만 급급해왔다.

주도적으로 의제와 이슈를 만들어내고 정당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선도하는 역할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선거 핵심 키워드는?

반면 본선 과정에서는 나름대로 ‘선거부정 척결’이나 ‘정책선거’ 따위의 의제를 적극 부각해왔던 것과 비교할 때 예선에는 의외로 소홀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후보자 공천은 정당 내부의 일’이라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남의 정당’에 간섭할 수는 없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해서일까?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정치가 한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선 정당의 민주화, 그 중에서도 특히 민주적 공천이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긴 하지만 그건 정당 내부의 일이 아니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내는 세금이 나의 정당 가입 여부와는 상관없이 정당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수백억원씩 각 정당에 지원되는 정당보조금이 그것이다. 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2004년 한나라당에 205억원, 열린우리당에 156억원의 국고가 지원됐다. 이것만 보더라도 세금을 내는 국민이라면 당원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정치개혁 차원에서 정당 민주화를 요구할 권리가 충분하다.

더욱이 이번 지방선거부터는 경남에서만 226명을 뽑는 기초의회 의원도 정당공천을 받게 된다. 도의원과 시장 군수, 도지사까지 합하면 적어도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당의 공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벌써부터 공천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한몫 단단히 챙기지 않겠느냐는 짐작이 나오고 있다.

도지사나 시장 군수후보까지는 형식적인 공천 과정이라도 거치겠지만, 수많은 기초의원 후보공천은 그야말로 국회의원 멋대로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그럴 경우 거액의 공천헌금을 갖다 바치든지, 아니더라도 총선에서 표를 몰아주겠다는 ‘충성맹세’없이는 어림도 없다는 전망이 설득력있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본선보다 예선에 주목하자

물론 형식적으로는 각 정당의 당헌 당규에 민주적 후보선출 절차가 규정돼 있긴 하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도 없고, 앞으로 지켜질 전망도 별로 없다. 따라서 결국 유권자의 힘으로 강제할 수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도내 각 시민단체와 언론에 감히 제안드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본선보다 예선에 주목하자. 유권자운동 차원에서 각 정당이 민주적이고 투명한 후보선출 시스템을 갖고 있는지, 과연 그걸 제대로 실천하는지를 집중 감시하자. 각 정당의 당헌 당규를 분석해 어느 정당의 시스템이 가장 민주적인지, 어느 정당이 가장 정치개혁에 역행하는지 성적표를 매기자.

공천 과정에서 구태를 답습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언론과 시민단체가 연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해당 후보는 물론 공천권을 휘두른 국회의원이나 지역당 책임자를 직접 타격하는 투쟁도 벌이자. 이래야 한국정치가 살고 대한민국이 산다. 대한민국의 줄기세포 신화가 ‘말짱 황’이 된 것도 어쩌면 멍청한 정치인들 때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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