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신항 명칭 논란이 화제가 됐다. 경남대 양운진 교수가 “이 논란을 일거에 종식시켜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한나라당이 정해주는 대로 하겠다”고 발표해버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실현가능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양 교수의 해법에 공감했다. 김태호 지사와 허남식 부산시장이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고, 양 시·도의 국회의원도 대부분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거기서 당론으로 명칭을 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수 있다는 거였다.

술자리 한담이긴 했지만 그냥 우스개 소리로 넘길 수 없는 건 이미 정부에서도 부산과 경남이 합의하여 명칭을 결정하라고 했던 적이 있었고, 양 지자체가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김태호 도지사가 자신의 정치력 부재를 감추기 위해 정부를 향해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 있나

실제 지난 21일자 경남도민일보에 정성인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김병로 진해시장이 신항 명칭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김 시장의 침묵은 신항명칭 문제와 관련해 도지사를 신뢰하지 않는데다 문제 접근 방법도 생각을 달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시장은 올해 들어서만도 몇 차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도지사와 부산시장이 만나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면 될 일인데도 괜히 주민들을 동원해 세 과시나 하고 있다”며 비난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신항 명칭 결정은 정부의 고유 권한인데도 양 자치단체장이 합의로 명칭을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을 때 이를 받아들여 명칭 문제를 해결하고 신항 운영 문제 등 더 중요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특히 김 시장은 “올 초까지만 명칭 문제를 해결했더라면 내년 지방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하반기로 넘어오면서 이제는 양쪽 단체장이 모두 내년 선거를 의식해 어떤 양보도 할 수 없게 내몰리게 됐다”고 진단했다는 것이다.

나는 김병로 시장을 잘 모르지만 그의 진단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개인적으로는 ‘부산·진해신항’ 정도로 이름을 정하는 게 무난하겠다고 생각해왔지만, ‘진해’라는 이름이 빠졌다고 해서 엄동설한에 3만 명(그것도 공무원을 빼면 노인과 부녀자들이 대부분이었다)이나 동원하여 추위에 떨게 할 정도로 분개할 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 신항 명칭이 뭐 그리 중요한가. 내 삶에 무슨 변화가 있나. 그리고 ‘행정구역’이라는 게 그야말로 ‘행정 편의’를 위해 나눠놓은 것일 뿐, 서민들의 삶에 뭐 별다른 게 있나.

정치적 이익 위한 노림수 아닌가

신항만 자체가 연간 12조원의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거기서 나오는 세금만 해도 엄청나지 않느냐고? 웃기지 마시라.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경남의 정치인들에게 속고 계신 거다. 명칭과 세금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걸 김태호 도지사나 한나라당 도의원들이 일부러 설명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신항에서 나오는 이익은 모두 국가에 귀속된다. 취득세나 등록세는 명칭과 관계없이 해당 지자체에 귀속된다. 경남 땅에서 나오는 세금은 경남에 들어오고, 부산 땅의 그것은 부산시로 간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왜 경남의 정치인들은 신항의 명칭에 목숨을 걸까? 내가 볼 때 그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과 국회의원, 도의원, 시·군의원들 입장에선 현 정부를 타격하면 할수록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이익이 될 게 뻔하다. 이런 호재를 놓칠 수 있나.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유권자 3만 명을 모아 놓고 연설할 기회를 이런 일 아니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 도민의 지역정서를 자극해 명분을 만들고, 이걸 통해 연일 언론에 얼굴을 비칠 수 있는 호재가 이것 말고 또 있을까?

그들은 말한다. 이번 신항 명칭이 오거돈 해수부 장관의 선거대비책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그러면서 그들은 얼굴에 철판을 깐 채 4인 선거구 분할 조례안을 버스 안에서 날치기로 처리한다. 실제 오거돈 장관도 그런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내가 볼 땐 피장파장이다. 서로 신항 명칭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그 틈에 끼여 이용당하는 건 추운 날씨에 동원된 군중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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