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추어탕처럼 이웃사랑도 때 없어요”

음지인 경남사회복지관 후문을 빙 돌아 정문으로 들어서자 양지 바른 너른 마당이 나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급식소로 들어가고 있고 목적지인 경남사회복지관 정문 옆 한 어린이집에서는 까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

따뜻한 손길이 그리운 연말임에도 한파소식에 ‘사랑의 온도’는 더 내려가 마음까지 움츠러드는 요즘, 훈훈한 후원자와의 만남을 항상 기약하는 복지계 어르신을 만났다. 조성철(55) 경남사회복지관 관장이다.

정오쯤, 복지관을 나와 음식점으로 향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갈곳이 마땅치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낮 시간 동안 저희가 보호합니다. 물리치료, 레크리에이션 등을 하죠. 내년부터 지원이 줄어 직원도 줄이고, 여기 오시는 분들도 10명밖에 못 받게 됐습니다. 발길은 계속 느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참.”

비지 한 모금 나눠먹던 그 시절 그 맛 잊히지 않아

복지관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중계역할을 한다. 아직까지는 없는 돈 쪼개 나누는 중산층들이 대부분의 후원자라며 안타까워했다.

“후원자 중 부유층은 5%도 안됩니다. 마음이 상하면 후원 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있고요. 예쁘고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를 요청할 땐 화가 치밉니다. 이미 가정에서 일탈된 아이들은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 후원자들의 몫이기도 한데….”

가장 기억에 남는 후원자는 ‘후원자와의 만남’의 날일 때면 3시간 꼬박 아이들과 놀아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마지막 청소까지 도와주고 가는 노키아 티엠씨 김기순 사장이란다.

옛 빈궁한 음식들 요즘 특별한 대접 ‘격세지감’

“후원자들 늦게 오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시간이 늦어 행사를 먼저 진행하면 먼저 시작했다고 노발대발하는 후원자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형식상 참가하죠. 4시간을 몽땅 투자하겠다는 김사장의 말에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행사 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그의 진심이 느껴지더군요.”

   
후원자 중 부유층은 5%도 안됩니다

이런저런 복지의 한계를 얘기하던 중 어느덧 한 조그만 식당에 다다랐다. 합성동 골목길에 있는 허름한 추어탕집(할매 추어탕)이다.

보기만 해도 짭짤한 멸치젓갈과 그 젓갈에 푹 찍어먹는 씻은 배춧잎, 참기름에 살짝 담겨 통통한 알이 더 선명한 명란젓이 반찬으로 차려졌다.

20년은 됨직한 이곳은 사시사철 추어탕만 판다. 이곳은 추어탕은 제철 음식이라 계절 따라 그 싱싱함은 조금 다르지만 장독에서 푹 삭은 듯한 갖가지 반찬들은 강산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조관장은 새 김장에 밀린 푹 삭은 김치를 넣고 살살 조린 고등어 찌개를 보더니 옛 기억이 떠오르는 듯 미소를 짓는다.

“지금 대우백화점 자리에 제가 어릴 땐 어창수산이라는 통조림 공장이 있었습니다. 통조림 만들면서 남은 고등어 대가리와 살점이 살짝 남은 뼈를 얻어와 찌개 해먹던 기억이 나네요. 배가 고픈 시절이라 고등어 눈알 중 딱딱한 부분만 남기고 다 먹어 치웠어요. 먹을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정말 고단백질을 먹고 자란거예요, 내가.

마음 상하면 후원 안한다고 으름장 놓기도 하죠

애환이 하나 둘 엿가락처럼 이어졌다. 한 때는 빈궁한 음식으로 여겨지던 음식들이 요즘은 몸에 좋거나 특별한 음식으로 대우받을 땐 격세지감을 느낀단다.

“어창수산 앞에 두부공장도 있었어요. 두부공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 앞에서 춤추면서 노래 한 곡 부르고 비지 한 모금 얻어오곤 했죠. 친구들이랑 나눠먹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지금이야 남는 게 음식이라 애써 나눠먹을 필요 없잖아요. 하지만 적더라도 나눠먹을때 더 맛있는 법이죠.”

반쯤 남은 추어탕 국물에 밥 한 그릇 넣고 쓱쓱 휘젓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후루룩 들이켠다.

“강냉이죽이라고 압니까?”

강냉이튀기는 알아도 강냉이죽은 처음 들어본다는 대답에 “강냉이죽이 서울에서는 아주 특별하고 귀한 음식으로 여겨지더라고요.”

아이들 마음 여는게 몫이기도 한데 안타까워요

서울에 있는 지인이 특별한 음식을 맛 보여주겠다고 데려간 곳이 강냉이죽 파는 곳 이었다고 조관장은 의아해했다. 어릴 때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배고팠던 음식이라 먹고 나서도 성에 안차 따로 밥을 사 먹었다며 강냉이죽에 얽힌 웃지 못할 사연도 떠올렸다.

아동학대센터 소장을 겸하고 있는 조관장은 이 일을 하면서 평생 함께 할 인연을 만났다. 5년 전 진해에서 미아가 된 채 마산 애리원에 있던 아이를 지난 10월 가족들의 합의하에 공개적으로 입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기학대가 심한 다섯 살 된 여자아이인데 아동학대센터에서 우연히 만났죠. 가족의 사랑이 최우선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안 그래도 아들녀석 둘 뿐이라 딸아이 하나 있었으면 해서 입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조관장은 아동학대센터를 알리는 일과 고아원을 나가 사회에 첫 발을 딛는 아이들을 돕는 데 집중할 거라고 내년 계획을 밝혔다.

“일을 너무 많이 벌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물질적 빈곤보다 더 큰 문제가 정신적 빈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손을 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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