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 논란과 관련, 가까운 사람과 언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나는 주로 MBC PD수첩의 논문 진위검증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언론 본연의 목적이 ‘진실추구’이며, 여기엔 과학분야 뿐 아니라 어떠한 성역도 있어선 안 된다는 논지였다.

   
상대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과학분야 만큼은 언론에 휘둘려선 안 되며, 논문의 진위는 후속연구의 성과로 자연히 입증된다는 것이었다. 굳이 검증하겠다면 황 교수의 논문을 뒤집거나 뛰어넘는 다른 논문을 내놓으면 된다는 거였다. 어떻게 감히 언론이 과학을 검증하겠다는 거냐는 말도 덧붙였다.

이 글에서 다시 내 입장을 펴려는 건 아니다. 문제는 황우석 교수를 옹호하는 상대의 입장에서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황 교수와 그의 논문에 대한 국민들의 맹신적 태도는 일부 언론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는 내 말에 대해서도 그는 “결국 그것도 언론의 문제 아니냐”고 받아쳤다. “모든 언론을 싸잡아 보지 말고 분리해서 봐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쩌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언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십수 년 전 기자 초년병 시절이었다. 기자협회가 주최하는 ‘산업시찰’이라는 걸 따라갔다. 1박2일간 경주를 거쳐 울산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는데, 최고급 식사와 최고급 숙소가 제공됐다. 처음으로 자 본 특급호텔은 마치 딴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놀란 것은 거기에 든 비용은 기자협회의 자체 경비가 아니라 한 재벌회사에서 부담했다는 것이었다. 그 재벌은 현대였다. 현대는 몇 년 후에도 울산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하자 이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호텔을 숙소로 제공하는 등 지나친 취재편의를 제공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이상호 X파일’에 대한 언론보도가 사건의 본질인 정·경·관·언 유착에서 불법도청으로 옮겨가던 시점에 참여연대는 의미 있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지난 96년부터 올해까지 삼성언론재단이 총 214명의 언론인에게 해외연수와 국내연수 등 혜택을 줬다는 것이다. 삼성의 혜택으로 가는 해외연수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1년간 지원되는 체재비만 월 2200 달러, 연간 학비 1만 달러에다 왕복항공료까지 모두 부담해준다. 국내연수는 석사과정 전 학기의 학비를 지원해준다.

물론 앞의 산업시찰이나 삼성언론재단의 언론인 지원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촌지’와는 다르다. 그러나 전자가 ‘명분을 갖춘 공개적인 것’라면 후자는 ‘음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만 다를 뿐, 그 본질에 있어선 뭐가 다를까.

지금 X파일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를 놓고 ‘삼성장학생’이니 뭐니 하는 말들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언론계도 그런 비판을 비켜나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 아닐까. 앞에서 황우석 교수를 놓고 나와 언쟁을 벌인 사람도 그런 입장이 아니었을까. 한 사람을 신적인 존재로 영웅화시킨 언론이나, 지금 와서 연구성과를 검증하겠다고 나선 PD수첩이나 국민들에겐 똑 같은 언론으로 보이고 있지 않을까.

다시 문제는 언론개혁이다

촌지도 거절하고 재벌의 혜택도 받지 않은 채 정말 소신을 갖고 언론활동을 해온 언론인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PD수첩도 그런 차원에서 억울한 희생양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부 잘못된 언론 때문에 올바른 언론까지 욕먹는다’는 말로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잘못된 언론을 고쳐내는 일은 결국 언론계 내부의 자정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걸 못한 것 역시 우리 언론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당장 우리지역부터 고칠 일이 있다. 각 대학의 ‘언론동문회’가 그것이다. 경남대·경상대·창원대에 각각 비슷한 성격의 동문조직이 있는 것으로 안다. 희한한 것은 유독 언론동문회에는 동문회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싼 호텔에서 대학 총장과 함께 밥과 술을 먹고 선물까지 받아 간다. 각 대학이 자기학교 출신 기자들을 끔찍이 챙기는 사례들은 이밖에도 많다. ‘삼성장학생’만큼은 아니겠지만, ‘○○대 장학생’이란 말도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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