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경상남도교육청 후문에서 창원정보과학고 교사 80여명이 ‘쟁취’라는 문구가 새겨진 머리띠를 두르고 4일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지난해 12월28일 학교법인 효동학원(이사장 김성숙)이 경상남도 교육청에 창원정보과학고 인문계고교 전환 및 학급감축을 위한 학칙변경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실업교육의 중심이 전문대로 옮겨지고 있고 전국적으로 실업고가 인문고로 전환하고 있는 마당에 학교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교사들은 “재단이 뚜렷한 대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인문고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실업교육을 포기하겠다는 한심한 처사”라며 반발했다.

정보과학고는 지난 1969년 경남여자상업고등학교로 개교해 창원지역의 유일한 여자상고로 30년간 2만490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2년전인 99년 3월 교명을 지금의 창원정보과학고로 바꾸고 학과를 개편할 때까지도 창원의 유일한 여상으로 그 몫을 해 왔다.

하지만 교명을 바꾼 지 불과 2년 만에 재단측이 “최근에 교육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이 인문계 전환을 원하고 있고 실업고에서도 대학진학을 원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며 인문고로 전환을 도교육청에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교사들은 재단이 학생이나 교사, 동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이전을 빌미로 인문계 전환은 물론 학급감축을 추진하고 있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현재 정보과학고 교사 105명중 81명이 반대서명을 한 상태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서류만 접수됐을 뿐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일선학교에서 인문계전환을 요구한다고 해서 모두 들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확실한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이처럼 역사적인 전통을 자랑하는 실업고가 인문고 전환을 신청한 경우는 비단 창원정보과학고 뿐만 아니다. 전국적으로 올해 김해농고와 부산의 경남상고, 부산상고가 동창회를 중심으로 인문고로 체제전환을 준비중이다.

올해부터 인문고로 전환한 상태에서 신입생을 모집한 경우도 목포상고와 광주상고 등 전국적으로 5곳에 이른다. 특히 지역에서도 지난해 2월, 80년의 전통을 이어온 지역의 명문 실업계고교인 마산상고가 교명을 용마고로 바꾸고 올해부터 인문고로 신입생을 모집했다.

실업고가 잇따라 인문고로 전환하면서 자칫 실업교육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인 정책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선 시·군교육청이 원칙도 없이 인문고 전환을 허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학여고 서익수 교장은 “지금의 실업고 위기는 실업고의 가치가 떨어져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교육정책의 빈곤과 실업고를 경시하는 사회적인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교육당국이 대입위주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실업교육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교장은 또 “현재 기업체의 취업의뢰에 일선 학교의 수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정책적으로 수요공급을 예측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에 치우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교육정책 부재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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