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승용차가 없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시외버스터미널에 갈 때마다 불쾌한 일이 있었다. 버스요금이나 서비스 문제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터미널 안 가게에서 파는 음료수가 너무 비싸다는 거였다.

   
시중에서 300원 하는 게 터미널에선 500원이고, 500원짜리는 1000원까지 받는 것도 허다했다. 터미널 안 가게들끼리 담합한 결과였다. 하지만 터미널 밖의 연쇄점이나 슈퍼를 찾기도 어렵고 차 시간에 쫓기다 보면 사기당하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음료수를 살 수밖에 없었다.

사소하게 넘길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게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해왔다. 피서철 관광지의 바가지요금은 ‘한철 장사’라 그렇다고 이해라도 할 수 있지만, 시내 한복판에 있는 터미널에서 사시사철 버젓이 바가지를 씌운다는 걸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생수 0.3ℓ에 500원

그러던 시외버스터미널에도 변화가 생겼다. 터미널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그동안 바가지를 씌워온 가게가 모두 철거되고 체인점 형태의 편의점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대기업 소유의 편의점이 영세 구멍가게의 생존권을 빼앗은 셈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자업자득이라는 점에서 고소한 생각까지 들었다.

어제 마산YMCA에서 오랫동안 소비자운동을 해왔던 이윤기 객원기자가 경남도민일보를 통해 이와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휘발유보다 비싼 물 마셔보셨나요’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 기사는 인터넷 도민일보(idomin.com)의 머리기사는 물론 종이신문에서도 사회면 머리를 먹었다.

한국철도공사에서 운영하는 KTX의 일반객실 자판기에서 파는 생수 가격이 터무니없는 바가지라는 것이다. 이윤기 기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0.5ℓ에 450원을 받는 생수를 KTX는 0.3ℓ 용기에 담아 500원을 받는 교묘한 상술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가격을 1ℓ로 환산하면 1667원이 되는데, 이는 시중 주유소에서 1400원대에 판매하는 휘발유 값보다 비싸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윤기 기자는 KTX에 음료를 공급하는 ‘한국철도유통’ 담당자의 거짓말까지 밝혀냈다. 그 담당자는 “고속도로 휴게소나 터미널과 비슷하게 가격을 책정한다”고 말했으나 조사 결과 용량을 달리 하여 실제로는 훨씬 비싸게 팔고 있더라는 것이다.

공기업이라는 사실 잊었나

그래서 나도 한국철도유통에 전화를 해봤다. 여전히 담당자는 시중의 생수 가격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시중 할인점과 비슷한 가격으로 받고 있다”면서 “자판기에서 파는 건 그렇지만 객실 카트에서 파는 건 0.5ℓ에 600원을 받으므로 비싼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 왜 자판기에서는 0.3ℓ를 500원에 파느냐’는 질문에는 다소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KTX를 공급하면서 향후 2년 동안 자판기를 비롯한 모든 설비의 개조를 금지하는 조건이 붙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즉 자판기에는 0.3ℓ 용기만 들어갈 수 있도록 돼 있고, 국내에서 그 용기 규격에 맞는 생수를 생산하는 곳이 1개 업체 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용기는 어쩔 수 없다지만, 가격은 조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하루 생수 매출이 100만원 정도에 불과한데다, 자판기 관리에 들어가는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사실 물 자체의 가격은 얼마 안 되지만, 생수의 용기에 따라 환경개선부담금 등이 부과되기 때문에 용기값이 대부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해명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구석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나 한국철도유통은 정부투자기관으로 공기업이다. 철도공사의 윤리경영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경영활동조차 국민정서와 충돌할 경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름대로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물을 공기업이 팔고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윤기 객원기자와 더불어 다시 한번 전국의 모든 유통점을 상대로 생수 가격을 비교조사해볼 것이다.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의견을 물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볼 때 이 문제는 결코 작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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