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단련하듯 음식도 자기조절 필요해요”

“선수들은 경기 3시간 전에 밥을 먹습니다. 탄수화물이 에너지를 동원하는데 최고거든요. 정해진 양만큼 시간정해 먹어야 필드에서 무리가 없죠.”

“요즘 어찌나 말을 많이 하는지, 입이 바짝바짝 말라요.”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이 무척 긴장돼 있다. 딱딱한 표정이 여간 풀어지지 않는다. 방금도 고향 산청에서 사람들을 만나 경남FC 얘기를 쏟아내고 왔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붙잡았다. 경남 FC 박항서(47) 감독이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소주잔을 기울이자 그제야 미소를 살짝 보인다.

“어릴 때 청국장 끓이면 구수한 냄새가 온 집에 퍼졌잖아요.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무 숭숭 썰어 넣어 말갛게 나오는 소고기 국밥도 참 맛있었는데….”

세계음식 많이 먹어도 어머니 손맛이 ‘최고’

브라질이며 터키며 안 가본 곳이 없다는데 그래도 음식은 우리 것이란다. 그는 어머님이 해주시던 음식이 최고라고 하면서도 고향에 가서는 먹지 않는다. 아니, 무심하게도 고향에 내려 갈 때 연락도 하지 않는다. 아흔을 넘겼으면서도 아들 온다 하면 전날부터 잔칫집마냥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님이 걱정돼서다.

그의 고향은 도랑을 따라 고기떼가 우르르 몰려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는 산청이다. 요즘은 동네마다 어탕집이 하나씩 있지만 사실 어탕의 원조는 산청. 산청사람이 말하는 ‘어탕 맛있게 먹는 법’이 자못 궁금하다.

“사람마다 먹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어탕은 방아·깻잎 향이 은근히 배면 칼칼한 맛이 우러나 참 맛있어요. 이 말 하니까, 또 입에서 군침이 도네~.”

한창 구수한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매콤달짝한 향이 솔솔 올라온다. 오동통한 살이 숟가락 가득 담기는 제주도 생갈치 찜이다.

“창원 온 지 얼마 안돼서 아는 곳이 몇 군데 없어요. 사실 가기도 힘들어요. 알아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 집은 그 몇 군데 중의 하나인데 갈치랑 고등어가 참 맛있어요.”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돼 많이 못먹겠다더니, 음식이 나오자마자 손 만한 갈치를 밥 위에 떡하니 올리고 순식간에 살을 발라낸다.

가장 즐겨먹는다는 된장국도 한 숟가락 뜬다. 된장국은 경기 전에 코치와 감독만이 먹을 수 있는 ‘특권 음식’이란다.

“발효음식을 먹고 나서 뛰면 배가 당겨요. 그래서 경기 전에는 선수들에게 먹이지 않습니다. 월드컵 코치할 때 저만 된장을 먹고 선수들은 침만 흘렸어요. 거 참, 더 맛있더라고.”

선수들 보약, 다름아닌 근육 풀어주는 ‘바나나’

선수들의 ‘경기전 음식 노하우’가 이어졌다. “선수들은 경기 3시간 전에 밥을 먹습니다. 탄수화물이 에너지를 동원하는데 최고거든요. 정해진 양만큼 시간을 정해서 먹어야 필드에서 무리가 없습니다. 몸 단련하듯 음식도 조절하면서 먹어야 문제가 없습니다.”

선수들이 보신으로 특별히 먹는 음식이 따로 있을까? 스태미나 음식을 떠올렸건만 생뚱 맞게도 그의 대답은 바나나다.

“바나나는 마그네슘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데, 마그네슘은 운동 끝나고 근육을 풀어주는 작용을 합니다. 사람들이 녹용·탕과 같은 스태미나 음식을 많이 먹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선수들 체질마다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먹습니다.”

연방 전화벨이 울린다. 숨은 용병 끌어오랴, 도민주 모으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바쁜 일정을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한 표정을 짓자 도리어 더 미안하다며 차 한잔을 시킨다. ‘밧데리’라는 그의 별명만큼이나 강인한 모습만 떠올려서일까.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고 운을 띄우자 눈웃음을 짓는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경기에서 지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아들이 제 눈치를 본다는 게 느껴졌어요.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 후로는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항상 웃는 모습으로 집에 들어갑니다. 일할 땐 불 같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뒤끝이 없어 ‘성격 좋다’ 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말을 던지고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한다.

어느 새 긴장도 풀고 인상도 펴졌다. 눈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월드컵 때 골인을 놓치는 아까운 순간에 호통을 치다가도, 골인하고 달려오는 선수들을 와락 껴안던 그의 모습이 교차된다. 일 앞에 무한정 강인하지만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곰팡내를 풍기는 사람, 그가 바로 박항서다.

박항서 감독과 만난 곳은 창원 ‘한라산’

모든 음식이 제주산이다. 생갈치부터 반찬으로 곁들여 나오는 젓갈까지, 팔딱거리는 싱싱한 맛이 특징이다. 이 날 먹은 통통한 생갈치찜은 비린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으면서 매콤하고 담백하다. 빨간 빛깔이 고운 젓갈은 밥에 쓱 비벼 먹으면 그만. 짭짤한 맛보다 고소한 맛이 강해 아이들 먹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

창원시 중앙동 평화상가 2층 한라산. (055)268-6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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