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보존은 생명과 생계의 문제다’

우간다 캄팔라 제9차 람사총회에 한국 민간참가단으로 가 있는 이종명 사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경남도민일보 독자들에게 현지통신을 보내왔다.

“습지와 물, 생명을 부양하고 생계를 지탱한다.” 아프리카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리고 있는 람사협약 제9차 당사국 총회의 부제다.

   
현명한 이용·생태적 특성 ‘개념논쟁’ 뜨거워


이전 회의들을 살펴봐도 람사 총회의 부제는 단순히 듣고 보기 좋은 말의 조합에 그치는 대신, 매번 회의가 갖는 특징과 주제를 대단히 적절하고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2002년 스페인에서 열린 8차 총회의 부제는 ‘물, 생명, 그리고 문화’였다. 습지와 인간의 관계가 문화적 차원에 있다가 이번 회의에서는 절박한 생계의 문제로 옮겨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회의가 아프리카에서 열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15년까지 절대 빈곤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요하네스버그 지구정상회담의 ‘새천년 개발 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에 견줘 현재의 진척이 너무나 처져 있다는 진단도 이 절박성을 지구적 문제로 공유하도록 만들었다.

회의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 정전 사태는 회의 자체의 ‘지속가능성’에는 상당한 위협이다. 하지만, 절대 빈곤이 늘고 있는 아프리카의 현실을 참가자 전체가 경험하게 함으로써 ‘습지와 빈곤 감소’라는 이번 회의의 이슈에 대한 고민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고 있다.

더불어 이번 회의의 가장 핵심 과제는 람사협약이 사용하고 있는 ‘현명한 이용’과 ‘생태적 특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보완이다. 1987년 회의에서 합의해 쓰고 있는 ‘현명한 이용’ 개념이 참으로 두루뭉실해서 실제 정확한 행동의 방향을 규정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8차 총회에서 정확한 정의와 사용에 대한 과학적 지침을 만들어 낼 것을 결의한 바 있다.

그 결과로 과학기술자문위원회가 이번 회의에 제출한 보완된 ‘현명한 이용’의 개념은, “습지의 서비스를 지속가능한 발전의 조건 아래 제공 받으면서도 생태적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생태적 특성’이란 습지의 요소, 과정, 효용의 총합을 말한다.

인간의 생활을 위한 기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습지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 습지의 특성 전체를 유지하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제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개념 정의를 둘러싼 논쟁이 회의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시너지’는 이번 회의가 추구하는 또 하나 주요 목표이다.

생물종다양성과 관련한 주요 국제협약과 효율적으로 협력하면서도, 통합적 수자원 관리나 어족 자원의 지속적 이용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각 지역내 협력과 특히, 여러 국경에 걸쳐 있는 습지의 보전을 위한 국가간 협력도 주요한 과제이다.

대단히 시의성 있는 결의안 두 가지도 눈길을 끈다.

조류 인플루엔자 관련 철새·습지 훼손 안돼

먼저, 쓰나미나 허리케인 사태에서 입증된 것처럼 습지의 재난 저감 기능을 재조명하고, 재해로 훼손된 습지의 복원을 위한 가이드라인 수립을 권고하고 있다.

또 최근 국제사회 초미의 관심사인 ‘조류 인플루엔자’와 관련한 결의안도 추진되고 있다. 철새를 통한 인플루엔자 전달에 대한 의심이 습지 보전을 위한 노력에 부정적 영향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면서, 철새의 이동을 막기 위해 습지를 파괴하거나 철새를 학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관련 국제기구들의 기존 회의 결과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대신, 철저한 예찰이나 가금류의 사육과 유통과정에 대한 관리 강화 등을 통해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이전의 회의에서는 전 세계 시민사회 단체들이 본회의에 전달할 결의문을 채택하고, 주요 대응 방안을 논의할 포럼이 열려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각 지역의 파괴에 직면한 습지 보전을 위해 람사 총회로 달려온 지방 NGO를 중심으로 매일 아침 긴급회의가 소집되고 있다.

전혀 현명하지 못한 습지 파괴 행위가 ‘현명한 이용’이란 미명 아래 정당화 되는 것을 막고, 실재 습지에 기대어 사는 주민과 생명들을 지탱하려는 노력이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 기대가 된다.

/이종명(사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제9차 람사총회 한국 민간참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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