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가을 미꾸라지 지금이 ‘제 맛’
“요즘은 마트 가면 사계절 음식재료를 다 볼 수 있어 어느 계절에 어느 음식이 맛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죠. 하지만 제철음식만큼 우리 몸에 좋은 건 없습니다. ”
“물론 농민들 그 심정 다 헤아리진 못하겠지요. 하지만 소득은 계속 급감하는데 농민들 속 타는 마음 오죽하겠습니까.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속 편하게 맛 얘기를 늘어놓기가 미안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서야 마음이 좀 편안해진걸까. 그는 조심스럽게 추어탕 우거지를 한 숟가락 가득 든다.
시원하고 맑은 국물이 입에 짝짝 붙는다. 자르르한 흰 쌀밥을 입에 더하니 금상첨화다. 그가 추어탕을 선택한 이유는 가을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풋내음이 코를 적실 땐 추어탕이 제일이다. 이맘때면 벼논 속의 미꾸라지들도 통통하게 잘 자라서 더없이 싱싱하다.
텃밭에 심어놓은 어린 배추 잎과 볼그레한 풋고추 몇 개와 새로 익어가는 ‘제피’(조피)열매 몇 낱을 준비하면 한 식구 3일도 거뜬히 견딜 추어탕이 끓여지곤 했단다.
“요즘은 마트 가면 사계절 음식재료를 다 볼 수 있어, 어느 계절에 어느 음식이 맛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죠. 하지만 제철음식만큼 우리 몸에 좋은 건 없습니다.”
그가 미꾸라지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문기씨와 만난 곳은 창원 ‘대성추어탕’ 이집 추어탕은 맑고 얼큰한 국물이 특색이다. 건더기는 많지 않고 톡 쏘는 고추가 다소 비릴 수 있는 맛을 싹 가시게 한다. 추어탕도 맛있지만 같이 나오는 반찬이 제철음식이 많아 자주 찾는다고 이문기 부본부장은 말했다. 창원시 상남동 경창상가 4층에 있다. |
맛만 봐도 자연산 미꾸라지 구분
미꾸라지 얘기라면 내놓을 자가 없을 듯하다. 그는 맛만 봐도 자연산 미꾸라지를 구분한단다. 자연산 미꾸라지는 기름기가 자글자글하고, 진한 국물이 특징이라고. 상 위에 나물과 채소가 제 색깔을 유난히 뽐낸다. 달짝지근한 맛이 그만인 배추부터 초록빛이 풍성한 호박나물까지.
빛깔 고운 나물을 보더니, 그는 아내 이야기를 꺼낸다.
“봄이면 아내와 등산을 하면서 꼭 봄나물을 등산가방에 한 가득 담아와요. 아내는 봄에 쑥을 가득 캐 두었다가 냉동실에 얼려놓고 겨울에도 꺼내 쑥국을 끓여줘요. 봄에 먹는 그 맛과 향이 그대로 느껴져요.”
그는 봄에는 달랠돌나물·도라지와 같은 봄나물, 여름에는 삼계탕, 가을에는 전어, 추어탕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말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제철 음식을 먹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은 겨울철에 숨어 있다고 그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슬고슬한 보리밥에 빨간 무채김치를 쓱쓱 비벼 먹으면 어떤 반찬도 필요없어요. 지금은 별스럽지 않은 음식 같지만 어릴 때 어머님이 해주시던 그 맛이 겨울만 되면 그리워져요.”
봄나물을 겨울 밥상에 올리는 재치 하며, 시어머니 솜씨 따라 무채김치를 만들어주는 아내의 음식솜씨가 보통이 아닌 듯하다. 그래도 그는 아내 자랑은 꺼내지 않는다. 겨우겨우 캐 물었더니, 소박한 웃음을 지으며 아내 음식자랑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내가 해주는 나물이 제일 맛있어요. 간을 참 잘 하는 것 같애. 나물 고유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걸 보면…”
어머니 음식 맛이 그립다며 몇 번을 되뇌던 그는 아내가 그 손맛을 따라갈 수 없다고 단언하더니 어느새 아내의 음식이 최고라는 결론을 낸다.
그는 농민들의 원성이 커질수록 우리 부모님이 손수 일군 쌀과 텃밭에서 막 따온 채소가 밥상 가득한 날이 더 그리워진다고 애잔해한다. 농민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줘야 한다며 그는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햇살이 눈이 부신 날,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 찌푸려진 미간은 햇살 때문만은 아닐 테다.
박종순 기자
yard@ido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