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가을 미꾸라지 지금이 ‘제 맛’

“요즘은 마트 가면 사계절 음식재료를 다 볼 수 있어 어느 계절에 어느 음식이 맛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죠. 하지만 제철음식만큼 우리 몸에 좋은 건 없습니다. ”

   
농민들의 근심만큼이나 무거운 볏가마니가 도청 앞을 가로막던 날 그를 만났다. 농협중앙회 경남부본부장 이문기(53)씨다. 차마 건네기 힘든 한마디를 그가 먼저 꺼낸다.

“물론 농민들 그 심정 다 헤아리진 못하겠지요. 하지만 소득은 계속 급감하는데 농민들 속 타는 마음 오죽하겠습니까.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속 편하게 맛 얘기를 늘어놓기가 미안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서야 마음이 좀 편안해진걸까. 그는 조심스럽게 추어탕 우거지를 한 숟가락 가득 든다.

시원하고 맑은 국물이 입에 짝짝 붙는다. 자르르한 흰 쌀밥을 입에 더하니 금상첨화다. 그가 추어탕을 선택한 이유는 가을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풋내음이 코를 적실 땐 추어탕이 제일이다. 이맘때면 벼논 속의 미꾸라지들도 통통하게 잘 자라서 더없이 싱싱하다.

텃밭에 심어놓은 어린 배추 잎과 볼그레한 풋고추 몇 개와 새로 익어가는 ‘제피’(조피)열매 몇 낱을 준비하면 한 식구 3일도 거뜬히 견딜 추어탕이 끓여지곤 했단다.

“요즘은 마트 가면 사계절 음식재료를 다 볼 수 있어, 어느 계절에 어느 음식이 맛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죠. 하지만 제철음식만큼 우리 몸에 좋은 건 없습니다.”

그가 미꾸라지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문기씨와 만난 곳은 창원 ‘대성추어탕’

이집 추어탕은 맑고 얼큰한 국물이 특색이다.

건더기는 많지 않고 톡 쏘는 고추가 다소 비릴 수 있는 맛을 싹 가시게 한다.

추어탕도 맛있지만 같이 나오는 반찬이 제철음식이 많아 자주 찾는다고 이문기 부본부장은 말했다.

창원시 상남동 경창상가 4층에 있다.

“가을철이 되면 논가에 미꾸라지가 발에 밟힐 정도로 많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처갓집에 가면 웅덩이에 통발을 넣고 미꾸라지를 잡곤 했지요. 제 고향인 의령 신반 5일장에 가도 그놈을 볼 수 있어요.”

맛만 봐도 자연산 미꾸라지 구분

미꾸라지 얘기라면 내놓을 자가 없을 듯하다. 그는 맛만 봐도 자연산 미꾸라지를 구분한단다. 자연산 미꾸라지는 기름기가 자글자글하고, 진한 국물이 특징이라고. 상 위에 나물과 채소가 제 색깔을 유난히 뽐낸다. 달짝지근한 맛이 그만인 배추부터 초록빛이 풍성한 호박나물까지.

빛깔 고운 나물을 보더니, 그는 아내 이야기를 꺼낸다.

“봄이면 아내와 등산을 하면서 꼭 봄나물을 등산가방에 한 가득 담아와요. 아내는 봄에 쑥을 가득 캐 두었다가 냉동실에 얼려놓고 겨울에도 꺼내 쑥국을 끓여줘요. 봄에 먹는 그 맛과 향이 그대로 느껴져요.”

그는 봄에는 달랠돌나물·도라지와 같은 봄나물, 여름에는 삼계탕, 가을에는 전어, 추어탕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말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제철 음식을 먹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은 겨울철에 숨어 있다고 그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슬고슬한 보리밥에 빨간 무채김치를 쓱쓱 비벼 먹으면 어떤 반찬도 필요없어요. 지금은 별스럽지 않은 음식 같지만 어릴 때 어머님이 해주시던 그 맛이 겨울만 되면 그리워져요.”

   
농민 어려운데 맛 얘기 미안해져


봄나물을 겨울 밥상에 올리는 재치 하며, 시어머니 솜씨 따라 무채김치를 만들어주는 아내의 음식솜씨가 보통이 아닌 듯하다. 그래도 그는 아내 자랑은 꺼내지 않는다. 겨우겨우 캐 물었더니, 소박한 웃음을 지으며 아내 음식자랑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내가 해주는 나물이 제일 맛있어요. 간을 참 잘 하는 것 같애. 나물 고유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걸 보면…”

어머니 음식 맛이 그립다며 몇 번을 되뇌던 그는 아내가 그 손맛을 따라갈 수 없다고 단언하더니 어느새 아내의 음식이 최고라는 결론을 낸다.

그는 농민들의 원성이 커질수록 우리 부모님이 손수 일군 쌀과 텃밭에서 막 따온 채소가 밥상 가득한 날이 더 그리워진다고 애잔해한다. 농민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줘야 한다며 그는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햇살이 눈이 부신 날,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 찌푸려진 미간은 햇살 때문만은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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