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수록 자유로워지는

‘책들이 단칸방에 어지럽게 굴러다닐 때 반듯한 책꽂이가 갖고 싶었다. 책꽂이에 빈칸이 많았을 때 아무 책이나 끼워 꽉 채우고 싶었다. 거실 전체가 서재로 바뀌었을 때 책들은 이미 더 이상 꽂힐 자리가 없었다.//(후략)(<삶, 그리고 버리기> 일부)

   
마산 시단의 원로 이광석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삶, 그리고 버리기>를 펴냈다. 이번 시집은 이제까지의 시집에서 비교적 낯익은 작품들을 골라내고 신작을 보태 시선집으로 엮은 것으로 고희 기념집이기도 하다.

<삶, 그리고 버리기>는 고희를 넘긴 이 시인이 지나온 시적 역정을 스스로 정리한 선집으로 한국문연의 ‘현대시 시인선’ 27권째로 나왔다.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는 발문에서 ‘순수를 향한 의지’라는 제목으로 ‘이광석의 시세계’를 살피며 “이광석에게 시는 혼탁한 현실세계를 견디면서 자기를 정화하는 존재의 버팀목”이라고 적고 있다. ‘생활은/끓는 주전자/시는/한잔의 순수/더 멋있는 빈잔//(후략)(<노을> 일부)’

시인인 이건청 한양대 교수는 “이광석의 시들을 읽어가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예리하게 세련된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 아니라 긍정적이며 포괄적인 휴머니스트의 삶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시가 아픔인 때도 있었다. 시가 내게 등을 돌리기까지 절망의 무게를 낮춘다. 버림의 미학을 택한다. 버림으로써 더 자유로울 수 있는 텅빈 잔과 같은 것. 어쩌면 그것은 내 시의 중심화두이자 내 삶의 해법인지도 모른다. 여기 담은 시편 모두를 세상을 향해 버린다. 어차피 삶도 버리기 연습이다.”

1935년 의령 출생인 이 시인은 1959년 <현대문학>에 청마 유치환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겨울나무들> <겨울을 나는 흰새> <겨울산행> <잡초가 어찌 낫을 두려워하랴> 등을 펴냈다. 마산 문인협회 회장, 경남문인협회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9월 월간 <현대시> 커버스토리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문연 펴냄, 253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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