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빈 진주여자고2

  “엄마, 코가 이상해. 며칠 전부터 숨쉬기가 좀 힘들어.”

  얼마 전 동생은 가래가 차고 숨쉬기가 힘이 들며 코가 아프다고 엄마께 말을 했다. 엄마는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있을 정도로 숨쉬기가 힘들어 보이는 동생이 걱정되었는지 잘 고친다는 이비인후과로 동생을 데리고 가셨다.

  진찰 후 의사 선생님께서는 검사결과가 확실치 않다며 암일 가능성도 잇고 코에 혹이 생겼을 수도 있다며 큰 병원으로 다시 가보라고 했다. 웬만해선 눈물을 보이지 않는 동생인데 이 날따라 너무나도 서럽게 우는 바람에 정말 깜짝 놀랐다. 자신에게 불확실한 병명이 생기자 너무 무서웠나보다.

  내 동생은 모두가 가장 서럽다고 말하는 ‘둘째’ 다.

  내가 맏이고, 저 밑에 어린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내가 타지로 공부를 하러 유학을 왔기 때문에 직장에 나가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여동생이 집안일 하며 동생까지 다 보살핀다. 학교생활도 저한텐 얼마나 벅찰 텐데 내가 없는 빈자리까지 채우기 위해 얼마나 힘들고 고될지…. 그런 모든 사실을 다 알면서도 모처럼 집에 가는 날까지도 나는 동생에게 이것 좀 해라 저것 좀 해라 심부름에 짜증까지 낸다. 그런데…이런 착한 내 동생이…지금…아프다.

  서울 큰 병원으로 가 보았더니 코에 물혹이 생겼단다. 코는 모든 부분과 다 연결이 되어 있어서 수술하기가 가장 힘이 든다고 하셨다. 마취를 시킨다 해도 눈 빠지게 아프다고 하는데 과연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아무리 아픔을 잘 참는 내 동생이라지만…!

  2005년 9월 15일. 드디어 수술 날이 잡혔다.

  푸르스름한 병원복으로 갈아입은 동생은 마치 가로등 꺼진 산 19번지 달동네처럼 적막하고 암담해 보였다. 그런데 날 보며 미소짓고 있는 동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보다 더 큰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날 보고 “저 정도의 병 가지고 저렇게 슬프다 왈가왈부 하면 우린 어떻게 살라고.”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알까. 아무리 작은 병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1분 1초가 급박한 불구덩이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지…!

  수술 전, 초록색 가운을 입고서 수술대에 오른 동생은 세상의 눈바람을 마치 혼자서 다 상대하고 있는 사람처럼 뭔가의 두려움과 공포감으로 가득 차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손을 꽉 잡으며 “괜찮다. 별거 아이다. 편한 마음으로 푹 자고 와. 알았제.”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기다리는 내내 불빛 한 점 안 보이는 폐쇄된 공간에서 빛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처럼 불안했다. 제발 무사히 끝나기만을….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열심히 빌고 또 빌었다.

  조금 뒤, 수술은 끝이 났다. 어떻게 수술이 진행됐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동생이 그나마 안심이었다. 코에서 손가락 만한 솜을 3개씩이나 빼면서 코피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양쪽에서 줄줄 흐르는 모습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동생은 우리가 더 가슴 아파할 것을 아는 것일까. 소리 죽여 울면서 “엄마, 언니야. 내 괜찮다. 이거 하나도 안 아프다. 신기하제. 코에서 솜이 나온다. 마술 같제.” 이러는 게 아닌가.

그것이 우리를 안심시키려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동생에게 화가 나고 답답했다. 차라리 아파 죽겠다고 미치겠다고 울면서 짜증이라도 내면 내 마음이 덜 아플텐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수술한 코에 먼지가 들어가면 안되기에 항상 코를 식염수로 세척하고 솜을 넣고 입으로 간간히 숨을 쉬어야 한다고. 그런데 누가 챙겨주기도 전에 어쩜 그렇게 잘 지키는지…안쓰러울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젠 우리 모두 나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내게 살짝 귓속말로 속삭였다.

  “언니야. 저번에 처음으로 진찰 받으러 간 병원에서 내가 왜 울었는 줄 아나. 내가 아픈거야 둘째치고 만약 큰 병이면 동생도 그렇고, 집안 일하며 엄마가 얼마나 힘들끼고…진짜 엄마 힘들꺼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드라. 근데 지금은 행복하다. 수술도 다 끝났고 이제 솜만 잘 갈아주면 다 낫는 거니까”

  우리 동생 ‘수빈이’는 맏이인 나보다 더 맏이 같은 존재다.  우리 동생 ‘수빈이’는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존재다.

  우리 동생 ‘수빈이’는 내 생명을 다 바쳐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존재다.

  집에 돌아와 양쪽 코에 솜을 끼우고 입이 바짝 마른 제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동생이 말하길 “아∼내 얼굴 진짜 웃기다. 너무 이상해…사람이 아닌 것 같다. 진짜 웃기제.”하며 우스갯소리를 날린다. 하지만 지금 니 마음속에선 100도씨 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겠지. 언니가 그 깊은 니 속을 왜 모르겠니. 그래도 언닌 니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데…!

  ‘수빈아, 거울에 비춰진 네 얼굴만 보지마.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너의 천사 같은 마음의 얼굴을 비춰봐. 얼마나 깨끗하니. 네 얼굴엔…우리가 걱정할까봐 애써 웃음 지어줄 수 있는 입이 있구 아낌없는 사랑으로 우리의 불안함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눈과 숨쉬기에 네가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코도 있잖아.

넌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지난 나의 동생이다! 사랑한다…수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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