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나 창원 봉림중 2

1. 녹동 친구와의 만남

“이나야, 네 방 청소 좀 해라.”

어머니께서 지시 하신대로 나와 동생들은 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도 깨끗이 정리되고 거실도 말끔해졌다. 갑자기 온 집안 식구들이 이렇게 부산하게 움직이며 청소에 신경을 쓴 이유는, 창원시와 전라남도 고흥군과의 자매 시 결연사업의 일환으로 녹동중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홈스테이 친구로 우리 가족과 함께 하룻동안 생활을 하게 된 친구는 ‘박다애’라는 학생이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다애를 만나면서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열다섯, 나와 비슷한 생각과 꿈을 가진 평범한 또래 친구일 뿐이었다.

녹동 중학교에서 온 친구들의 환영식을 마친 후, 학교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전기연구소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서 손의 온도를 이용하여 전기를 발생시키고 가상번개를 만드는 확동 등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론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전기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이용되는지, 이로운 점과 전기를 잘못 사용함으로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등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전기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우리 도의 문화발전을 위해 개관한 도립 미술관에 들러 전시중인 중국 미술전을 관람하였다. 쉽게 볼 수 없는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며 중국 미술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날은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를 견학하였다. 사관생도들의 절도 있고 늠름한 모습은 푸른 바다와 하얀 제복이 어우러져 눈이 부셨다. 몇몇 남학생들은 해군 사관생도가 되겠다고 소곤거렸다. 그곳에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두 지휘하던 거북선을 만났다.

웅장한 모습에 ‘이순신’ 장군의 기백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과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애국심을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짧은 일정으로 성산패총, 창원의 집, 성주사 등 창원의 문화유산과 공업단지의 자랑거리를 녹동 친구들에게 더 많이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웠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지역감정의 골이 깊다고 어른들은 말을 하지만, 그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만난 전남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마음이 고왔다. 함께하는 시간동안 서로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녹동친구들이 좋은 경험과 소중한 추억을 가슴 가득 안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2학기에 있을 녹동 중학교 방문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겠지.

2. 전라도 방문기

버스를 타고 전라도를 향하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새로운 고장을 찾아간다는 기대감으로 즐거운 마음이었다. 가끔 창 밖으로 도로에서 나락을 말리는 분들을 보았는데 창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신기했고, 또 시골의 정겨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녹동 중학교에 도착하여 나로대교 준공 기념탑을 탐방하러 갔다. 햇빛이 강해 위를 잘 올려다 볼 수 없었지만 탑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 아주 높이 떠 있었다. 탑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호수에 비친 하늘, 구름들이 마치 물고기처럼 헤엄치며 놀고 있었고 향긋한 풀 냄새와 이름모를 들꽃들의 속삭임, 농부와 함께 있는 소의 울음소리, 어느 화가가 그려놓은 듯한 정겨운 풍경 속에 나는 어느새 외할아버지 댁으로 달려가는 착각을 하였다.

다음 날, 비를 맞으며 배를 타고 소록도로 향했다. 녹동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라 아쉬움이 앞섰다.

소록도에 도착해 병원으로 향하는 친구들의 얼굴은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피곤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한센병 환자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을까? 혹시 전염되면 어쩌지? 등의 우려와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새끼 사슴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섬 소록도, 나환자들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 <보리피리> <파랑새> 등으로 자신의 운명을 노래한 ‘한하운’ 시인이 생각났다. 소록도는 소설적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한 곳으로 개인적으로 꼭 가고 싶었던 곳이라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 곳 병원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인데 창원에서 온 우리들을 위해 특별히 공개하였다. 친구들과 선생님들께서도 신기해하며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걸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며 좋아했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지만 그런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빨간 벽돌집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한센병 환자들에게 노역을 시켜 건립한 곳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곳의 잘 가꾸어진 나무들도 모두 환자들이 직접 손질해서 가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념관에 들어가서 한센병 환자이신 어느 할머니의 설명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그때의 서러운 기억이 나시는지 연신 눈물을 흘리시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다. 할머니의 눈물에서 세상과 격리되어 평생을 살아가는 그들의 애환과 고통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와 친구들도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록도는 나에게 지금 눈물의 섬으로 남아있다. 새삼스레 나를 건강하게 낳아주신 부모님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를 알게 해 준 소록도.

예방접종으로 한센병이 전염되지 않는다니 다행이었고, 치료중인 환자들도 한센병에서 벗어나 우리와 똑같은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배에 올라탔다. 언제쯤 그들도 이 배를 타고 뭍으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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