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현대시사 등에 담긴 지리산 의미 고찰

“지리산에 몇 번 올랐다고 지리산을 품었다 말하지 말라.”

지난 15~16일 함양에서 열린 ‘제1회 지리산문학제’는 천년의 숲 ‘상림’을 문화의 오아시스로 만들기 위해 지역 문인들이 마련한 자리.

▲ 경남도민일보 자료사진.
둘쨋날 진행된 문학심포지엄에서는 이성모 마산대 교수가 ‘지리산 시의 정신사’, 박태성 창원대 강사가 ‘한시에 나타난 지리산의 형상’을 주제로 우리 문학 속에 담긴 ‘지리산’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태성 박사는 한시 속의 지리산은 모성·이상향·중심산·제도적 상징 등 산을 삶의 바탕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심성 속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저 멀리로는 가야산 바위 위에 신발 벗어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던 신라의 최치원이 화개동천의 구름과 서리를 불러 글씨를 쓴 곳이지만, 가깝게는 ‘빨치산’으로 대표되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지리산이다.

광복 이후 현대시사에서 지리산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시를 쓴 사람으로 이성모 교수는 정규화·이시영·오봉옥씨를 꼽았다.

이들에게 지리산은 역사 속에 고통받는 산으로 남겨져 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도 없이 고통이 원환의 고리를 타고 흐르는 공간에 놓여 있다.

정규화씨는 <농민의 아들> <스스로 떠나는 길> <지리산과 인공신장실과 시> 등의 시집에 지리산을 대상화한 시를 게재했고, 그의 시의 원형이자 삶의 각질은 지리산 그 자체임을 스스로 새겨 시를 썼다.

그는 하동군 청암면 위태리가 고향으로, 아버지는 보도연맹을 자수차 갔다가 죽었다.

‘아버지가 쫓기고 쫓기는 틈에/뇌물로 가산을 탕진하고/마지막에 집채까지 불순분자의 집이라고/밤중에 불질러져 버렸다//(<다시 고향에서 1> 부분)’

비극은 과거 어린 시절에 끝났고 고향은 역사적 질곡을 넘어서 평온하지만 그에게 있어 지리산이라는 존재는 스스로 자신을 열어 보이는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오봉옥의 시집 <지리산 갈대꽃>에서 지리산은 죽창부대 반란군이 갈대꽃이 되어 흐드러진 공간이다.

지리산은 “젊은 울아비들 불러가선 영영 보내지 않는(<반란군 뫼똥>중)” 곳이며, “어느 날인가 부락 주민들 모두가 갱변으로 끌려갔대요 그리곤 이미 파놓은 구덩이에 젊은네들 처넣더니 빨갱이 마을이라고 마구 총질을 했다지요(<한나절 공화국>중)”라는 비극적 공간이다.

<지리산 갈대꽃>은 전편에 걸쳐 지리산이라는 곳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를 관류하며 흐르는 반외세의 발원지이며 근거지라는 관점에서 시종일관하고 있다.

이시영은 지리산에 묻힌 영령들의 백골을 통해 역사를 말하기보다는 지리산 자락에 들어가 지리산이 되어버린 이들의 곤고한 삶을 결코 크지 않은 목소리로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픈 역사 품은 곳…산 그 자체로 다시 출발할 때


이시영의 시에는 지리산 역사의 생채기가 곳곳에 배어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생채기가 오늘에도 이어지는 폭력으로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다.

‘형님은 누에/서울에서 돌아와/흙벽을 파고/잠들지 않았다/담쟁이 풀 뒤에/말못할 낙인의 주먹들이 두드리고 있다//(<부역> 부분)’

원죄와도 같은 부역의 낙인이 찍힌 형이 지난날 소학교 마당에 대창에 찔려 죽은 피의 역사, 망령의 역사에 목을 물어뜯기고 있다고 이시영은 시를 통해 고백하고 있다.

이성모 교수는 “더이상 지리산을 이데올로기의 산으로 고통받는 공간으로 남겨놓지 않고, 진리를 머금고 있는 산, 그 자체가 거룩한 성소에서 지리산이 되어버린 시인을 만나고 싶다”고 끝맺었다.

‘살은 흙이고, 뼈는 돌이며, 눈물과 땀은 비와 이슬이고, 숨결은 바람’인 산 그 자체로서의 지리산으로 다시 출발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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