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보다 더 큰 김밥, 달콤한 쫄면 ‘진주 양분식’

“오늘 거기 알제?”

“니 먼저 가서 자리 잡아라.”

10여 년 전 한 여고 교실.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친구끼리 약속 잡기 바빴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 김밥과 쫄뽁이.
부랴부랴 책가방을 챙기고‘행여나 앉을 자리 없을까’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여고 앞 분식점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어느새 아기엄마, 직장인이 된 졸업생들은 친구들과 수다떨며 먹던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엉덩이 삐집고 앉아 음식이 언제 나올지도 모르면서 급한 마음에 숟가락부터 챙겼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주인 아주머니가 쟁반을 들고 방안에 들어오면, “맛있겠다”라는 감탄사가 먼저 쏟아진다. 이미 군침은 흐르고 10분도 안 돼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

지금도 아련한 추억의 맛을 추천 받아 학교 앞 양분식 집을 찾았다. 요즘 아이들의 까다로운 입맛 탓에 메뉴가 몇 개 더 늘어났을 뿐, 추억의 그 맛과 아주머니의 정겨움은 변함이 없었다.

△16년 된 진주여고 앞 ‘진주양분식’

허름한 문을 빠끔히 열면 눈앞에 방 하나가 보인다. 졸업생들이 남기고 간 카네이션과 액자가 유난히 눈에 띈다.

▲ 숟가락보다 더 큰 김밥.
“졸업생들이 “어머니!”하고 찾아오면 제일 뿌듯해. 지금 아이들은 밥만 먹고 갔지만 옛날에는 힘든 일이 있으면 이 방안에서 고민도 털어놓고 그랬지.”

‘진주양분식’ 김순례(62) 할머니도 그때 그 학생들이 많이 그리운 눈빛이다.

말로만 듣던 큰 김밥을 시켰다. 숟가락의 두 배다. 입안 가득한 김밥. 비록 요즘처럼 별의 별 이름을 다 붙인 김밥보다 맛은 덜하지만, 할머니의 정만은 따라올 자가 없을 듯하다.

요즘 찾을 수 없는 달콤한 쫄면도 향수를 불러냈다. 쓰윽쓱 비벼 젓가락에 빙빙 돌린 후 입에 쏙 넣으면 단맛이 입안을 감돈다.

김치 돌솥 비빔밥·각종 덮밥과 같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메뉴가 추가됐다.

“10년 전 만해도 라면이랑 떡볶이가 제일 인기였는데, 요즘 애들은 집에서 잘 먹어서 그런가 그런 거 안 먹더라고. 비싸도 밥을 찾는데 그것도 좀 별난 맛을 찾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개발했지.”

가게 문 너머 진주여고 교문이 어렴풋이 보인다. 1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찾아오면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는 주인 할머니. ‘혹시나 올까’마음은 항상 10년 전 그 기억에 가 있단다.

▲ 마산 산복도로 제일여고 앞 분식점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쫄우동.
산복도로 앞 학교 분식점에만 있었던 쫄우동 ‘먹고가자’

△ 마산 제일여고 앞 ‘먹고가자 양분식’

“학교 급식 한 이후로 분식점이 다 망했다 아이가. 남아있는 분식점은 여기랑 저기 앞에 두 군데 밖에 없다. 옛날에는 다 큰 딸내미들이 저 담을 튀어 넘고 와서 먹고 가고 했다 아이가.”

마산 제일여고 앞 한 양분식집. 주인 아줌마 남귀숙(53)씨는 기억을 더듬으며 미소를 짓는다.

마산 산복도로에는 오래된 학교가 즐비하다. 하지만 학교 앞은 새 건물들이 들어서 샌드위치나 꼬치집, 술집만 늘어서 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은 마산제일여고 앞. 계단을 따라 골목에 들어서니 5군데 정도가 눈에 띄는데 다 망하고 2군데만 겨우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1988년부터 분식점을 했었다는 남귀숙 아주머니. 96년까지 분식점을 하다 잠시 책방으로 전환했다가 인터넷 서점 붐이 일면서 그 일은 접고 2002년부터 다시 옛 분식 맛을 이어오고 있다고.

쫄우동은 이 동네에만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미미양분식에서 이 맛을 처음 개발했다. 학생들 사이에 맛이 소문나자 학교 앞 분식점에서 다 쫄우동을 내걸었다.

쫄깃쫄깃한 맛이 걸쭉한 육수와 만나 달짝지근하면서도 얼큰한 맛을 낸다.

“하루는 임신부가 왔더라고. 학창시절 먹던 쫄우동이 너무 먹고싶다고 꼭 해달라는 거라. 쫄우동은 육수가 제일 중요한데, 마치는 시간이 되다보니 육수가 다 떨어졌네. 못 만든다니까 쫄우동 찾아 나가더라고. 한참을 돌더니 다시 우리 집에 와선 쫄우동 하는 곳이 이 곳밖에 없다면서 해달라는데 결국 못해줬어.”

▲ 쫄면.
주인아주머니가 더 아쉬워했다.

“아줌마, 오이 빼주세요.” 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한마디 툭 던진다.

주인아주머니는 요즘 아이들은 요구도 많고, 입맛도 까다로워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는 대로 먹고, 아줌마 바쁘면 도와주던 그 여고생들이 가끔은 그립다며 옛 추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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