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을 푸른 나물에 빨간 고추장 ‘쓱쓱’ “이게 바로 건강식”

비빔밥에 들어가는 다양한 나물처럼, 마산의 한 보리밥 뷔페에는 각자의 식성을 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속에 한 여성이 환한 웃음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싼다. 마산기상대 첫 여성 대장 김명수(50)씨다.

   
 
 
그를 처음 보자마자 나물의 흐릿한 맛을 화끈하게 버무리는 맵싸한 고추장과 같은 수식어가 떠올랐다. 한 분야에 최고의 자리, 기상대장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지켜나가기엔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김씨는 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하다 1988년 대전지방기상청 예보관으로 특채된 후 기상청 기상대장까지 올랐다.

어떤 날씨를 좋아할까? 마침 태풍 ‘나비’가 걱정을 끼치고 간 때라 자못 더 궁금해졌다.

“비 안 오는 흐린 날씨가 좋더라고요.” 답을 듣자 궁금증이 더 커진다.

“어릴 때 느낀건데, 햇빛이 내리쬐는 날엔 사람들이 웃지 않고 인상을 쓰고 다니더라고요. 비 오는 날은 이쪽 일 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날씨죠.” 쓴웃음을 지으며 당연지사라는 표정을 짓는다.

“한번은 직원들이랑 감자를 쪄 먹었어요. 햇감자가 너무 맛있어 비 오는 날에 먹으면 더 맛있다고 했더니 직원들이 손사래를 치더군요. 아무리 비나 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기상대 일을 하게 되면 싫어하게 되더라고요.”

“비빔밥 나물, 어머니 손맛 들어가야 감칠맛나죠”

그는 유난히 채소를 찾는다. “빈혈이라 병원에서 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하는데 손이 잘 안가요. 횟집에 가도 매운탕 찾기 바빠요. 회는 아직 그 깔끔한 맛을 잘 못 느끼겠어요. 지난 8월 마산기상대에 부임해서 횟집에 두 번, 보리밥 뷔페에 두 번 왔는데, 제가 소개할 곳은 이곳이 제일 적당하더라고요.”

양푼 한 곳에 그는 나물을 차곡차곡 모은다. 흩어진 나물을 빙 둘러 엉기게 하고는 숟가락 가득 담아 한참을 들여다본다. “항상 느끼지만 이 나물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나 궁금해요.”

그는 21년 전 한식·양식 자격증을 다 거머쥐었을 정도로 음식솜씨가 좋다. 하지만 옛날 우리네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손맛내기가 제일 힘들단다. “불고기나 소고기국 같은 것은 요리책 보고 대충 끓여도 맛있거든요. 하지만 시래깃국이나 된장국은 정말 따라하기 힘들어요. 게다가 나물과 물김치는 책보고 해도 전혀 감이 안 와요.” 나물 맛을 되씹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에게도 음식 비법이 있다. 남편과 아주버님이 유일하게 인정한 것인데, 불고기와 부침개를 맛있게 만든단다.

“보통 양념한 불고기를 볶을 때 프라이팬에 그냥 볶잖아요. 프라이팬을 먼저 달군 후 기름을 붓고 다시 달군 다음 고기를 볶아보세요. 뜨거운 불에 빨리 달궈지니까 고기가 질기지 않고 눌어 붙지도 않아서 맛있어요. 부침개도 얇게 펴서 이렇게 해보세요.”

아들은 어떤 음식 좋아하냐고 묻자 그는 “엄마가 해주는 건 다 맛있대요.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 안되다 보니….” 미안한 미소를 머금는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 마음이 다 그렇듯이 자식얘기만 나오면 마음 한 곳이 저려오나보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잘 커준 아들에게, 직장생활하면서 잘 키워준 남편에게 항상 고맙단다.

“아들이 6살 되기 전까지는 대학강사 일을 해서 거의 매일 볼 수 있었어요. 이후 기상청에서 일하게 되면서 주말에만 겨우 볼 수 있었죠. 한번은 아이가 헛기침을 자꾸 하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의학용어로 ‘틱’이라고 부모가 그리워 나타나는 불안정서라고 하대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이어진다.

한식·양식 자격증 있어도 김칟된장국 힘들어

   
 
 
“지금이야 편하게 일하지만 그때는 밤 근무도 해야했고 주말도 따로 없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토요일마다 제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왔죠. 제일 감동적일 때가 있었는데, 아이가 시험 문제에서 무엇이 틀렸고 그 이유는 무엇이다 라고 상세하게 설명해 줬을 때였어요. 남편이 그렇게 세심한 사람인지 그때 알았어요.” 15년이 넘게 엄마로서, 직장상사로서 흘린 땀이 오롯이 묻어난다.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며 오찬을 즐기는 동안 생각지 않게 반찬이 조금 남았다. “여긴 음식 남기면 2000원이에요. 음식도 맛있지만 이 음식점은 이게 제일 맘에 들어요. 욕심부리면 벌 받아요.”

어느새 그 시끌벅적하던 식당이 잠잠해졌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매운 고추장보다 비빔밥의 매운 내음을 식혀주는 시원하고 맑은 된장국이 생각났다.

/글 박종순·사진 유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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