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트리나는 충격적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저토록 취약할 수 있는가. 심지어 자국 영토 내에서 일어난 재앙에 대해, 생존자까지 일 주일이나 방치하는 이 체제를 어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과연 난센스일까.

   
그렇지 않다. 미국의 관료체제는 소련체제가 패망한 후 남은 세계최강의 관료체제이다. 문제는 관료제 자체에 있었다.

관료적 힘의 원천은 강력한 통제력이다. 우리는 통제력에 관한 한 관료제보다 더 우수한 제도를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밀하게 만들어진 표준화된 일련의 행동 규칙이다.

그리하여 이 체제는 통제가 필요한 모든 곳에 도입되었고, 군대, 학교, 공장 등 모든 근대적 거대 조직에서 대표적 관리 규범으로 작동되었다.

그러나 이 정밀하고 거대한 관료 조직은, 그것이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는 만큼, 바로 그만큼의 약점을 안고 있다. 이것은 마치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가 그러하듯, 톱니바퀴 같은 한 부분만 작동하지 않더라도 전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태풍의 피해자들이 물위를 떠돌고 있는 동안에도 미국의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책임과 권한의 영역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불행히도, 관료제 조직은 사전에 예상된 사태에 대해서만 대응할 능력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우수하다 하더라도, 스위치의 조작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스스로 독자적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미국은 왜 이라크 전쟁처럼 정교하게 계산된 대규모의 전쟁은 수행해 내면서도, 9·11 테러의 주역들은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테러 조직이 네트워크 조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동호인 그룹이 그러하듯 이러한 네트워크는 진화와 변화를 거듭한다. 필요에 따라 모이고, 새로움을 찾아 흩어진다.

인터넷에서 구성원은 ID로만 파악되고, ID가 사라진 곳에서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여기에 더하여, 알 카에다 테러 조직은 관료적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꼬리를 끊어버릴 수 있는 자율적이고 독립적 조직이다.

오늘날 진보적 기업의 지향점은 바로 이 네트워크 조직이다. 네트워크 조직의 힘은 유동성과 기동성이다.

또한, 이 조직에서는 보통의 역량을 고루 갖춘 표준적, 관료적 인간이 아니라 다양하게 펼쳐진 개성의 세계에서 저마다의 주요 역량 하나씩을 갖춘 인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결국, 이 개성들의 결합과 속도야말로 네트워크의 역량을 결정할 것이다. 관료제가 주어진 개인의 역량을 부분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네트워크는 개별 역량들을 결합시키면서 핵융합과 같은 파괴력을 나타낸다. 미래는 궁극적으로 네트워크의 것이다.

우리는 이 미래의 네트워크에 투입할 능력을 갖춘 인간을 현재 교육하고 있는가.

필자는, 이해관계로 뭉쳐진 사립학교와 관료주의로 무장된 공교육 체제가 우리 아이들을 개성과 저 마다의 자질의 세계로 해방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다.

교직자들은 교육관료 조직을 탓한다. 그러나 교육체제 자체가 관료제적 소산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육부과 교직자는 교육관료제 내에서의 분업일 따름이며, 원래 양분될 수 없는 하나의 몸통이다.

단언컨대, 설사 교육체제를 비난하는 교직자들을 모두 교육관료로 바꾼다 하더라도 이 체제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교육은 모든 관료제의 최고 정점에 서 있다. 마르크스가 “나는 개별의 자본가를 비난하려 하지 않는다. 역사를 자연사적 발전과정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들 또한 이 체제의 소산일 따름이다”라고 말하듯이, 필자는 교육체제의 진화만이 우리 교육의 이러한 질곡을 벗어 던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교육에 네트워크를 도입할 수 있을까. 네트워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시공의 한계를 초월하는 네트워크 개념을 도입할 수 없을까.

한 명의 선생님이 수 만 명의 학생을 인터넷을 통해 가르치고, 한 명의 선생님이 한 명의 위대한 시인의 소양을 길러내고, 광주와 대구의 학생들이 인터넷에서 함께 모여 같이 공부하게 할 수 없을까.

공동의 관심을 가진 어린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아 지도할 수 있도록 선생님들에게 그 여건을 만들어 줄 수 없을까.

우리가 이 퇴행적인 관료제적 습관과 타성을 버려야만 네트워크조직은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효율성의 개념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 리얼리즘이란 곧 도래할 시대와 아직 변하지 않고 있는 시대의 중간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다.

/정용택(경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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