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비’가 날아간 하늘은 쪽빛 푸름으로 쑤욱 높아져 가을이 느껴집니다. 거리에는 긴 팔 옷을 입은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어 우리집 중·고생이 곧 갈아입어야 하는 봄가을 교복을 꺼내다 보니 학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 ‘교복’이 새삼스러워 보입니다.

새 ‘옷’이라야 설이나 추석 명절에 한번 씩 얻어 입으면 다행이었는데 세탁소를 하던 우리 집에서는 재봉틀로 줄이고 털실로 떠서 마련한 것들이 고작이었고 그나마 동생에게 물려 입히느라 팔꿈치와 엉덩이 무릎은 가죽이나 다른 천으로 동그랗게 덧대어져 있었습니다. 내 몸의 크기를 재어 나만을 위한 옷을 맞추어 입을 수 있었던 첫 번 째 경험은 중학교 교복을 마련할 때였습니다. 한창 자랄 때 3년 입을 요량으로 풍덩하게 맞춘 옷이 무슨 맵시가 있었겠습니까? 옷이 귀하던 그 때는 그 풍덩한 교복을 입고 입학하는 날을 꽤나 설레면서 기다렸습니다.

입고 싶은 옷 입을 권리

여학생들은 칼라에 녹말풀을 먹여 다림질 해 깃을 빳빳이 세워야 했는데 아침이면 풀먹인 칼라를 다림질 해 달라는 손님들이 몇몇씩 세탁소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색도 같고 생긴 것도 똑같은 옷이지만 옷을 입어내는 매무새들은 사뭇 달랐습니다.

바지나 치마의 길이를 제 맘에 맞게 고치기도 하고 옷의 폭을 줄이거나 늘여 나름대로 바라는 맵시를 보여주곤 했는데 ‘나팔바지’‘맘보바지’‘배꼽바지’등 그 때 그 때 유행을 교복도 비슷하게 쫓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모습들은 지금 교복을 입고 생활하는 학생들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넘어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너무도 다양하고 창의적이며 넘쳐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복이라는 똑 같은 틀 속에 갇혀 지내는 것이 힘들다는 나름대로의 몸짓과 표현으로 보아집니다.

그런데 이런 단체복을 거의 모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입히고 있습니다. 굳이 원복이나 체육복을 마련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밖으로 자주 가는 현장학습 때 다른 유치원의 원아들과 구별할 수 있어 유아들을 관리하기 편리하다는 것이었고 유난히 옷 타령이 심한 유아들의 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구실도 될 수 있으며, 유아들에게 활동성 있는 옷을 입힐 수 있다는 나름대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들의 경향성을 한 마디로 말 한다면 좀 더 안전한 ‘관리’와 ‘통제’입니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혀야 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학생들의 입장보다는 학교나 교사 부모들의 편리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최소한 자기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만큼은 보장받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자유 속에는 머리를 기르거나 자르고 머리의 모양을 꾸밀 수 있는 것과 내 몸 위에 걸쳐 지는 옷을 선택해서 입을 수 있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 두 가지는 기본적인 자유를 넘어서 자신을 표현하고 나타내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입고 싶은 옷을 입고 꾸미고 싶은 모양으로 머리를 바꾸는 즐거움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어리고 충동적이라 해서 이런 기본적인 자유를 제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비싼 교복 ‘물려주기 운동’ 을

한 때 교복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의 청소년들이 비행을 더 많이 저질렀다든가 문란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외려 교육자율화의 영향으로 한국이 동남아의 패션과 대중문화를 주도 할 수 있었다는 주장들이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늘 자라나는 세대는 어른들보다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자기 주장이 분명합니다.

언젠가는 중고생들도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찾게 되겠지만 어른들 세상이란 옳고 그름보다는 온갖 복잡한 이해 관계에 의해 어떤 일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교복값은 평상복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싼 편이라 한 해에 입학생이 둘이나 있었던 우리집은 학교 보내기 힘들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게다가 3년 간 20㎝가 넘게 자란 우리집 아이는 처음에 맞춘 교복을 다 수선해도 길이가 짧아 앞집 선배에게 교복을 물려받지 못했다면 여름옷과 겨울옷 해서 몇 십만 원이 넘는 돈이 교복값으로 한 번 더 나갔을 것입니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요즘, 새로 입학을 앞둔 학생이 있는 집에서는 수업료보다 훨씬 비싼 교복비가 가정 경제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지역별로 교복 물려주기 운동을 벌일 계획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정말 도움이 되는 고마운 운동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선배에게 받은 혜택을 우리아이도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마음이 뿌듯합니다.

/안호형(창원 성주초교병설유치원 교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