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가득 욘사마, 풍성한 여백은 어디로

추석을 겨냥해 개봉을 예정한 한국영화들이 하나둘씩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 600만 관객들을 넘보는 <웰컴 투 동막골>을 비롯한 한국영화 흥행상승곡선 속에 올 추석 극장가를 장식할 한국영화들은 장르로는 어느 해보다 풍성하다.

<가문의 영광> 속편인 <가문의 위기>는 코미디물로 넉넉한 추석 스크린 인심에다 전통적인 명절 코미디물 강세 속에 최소 관객몰이는 문제가 없을 듯하다. 영화에 대한 폄훼라곤 할 수 없지만 다른 두 편에 비한다면 이 영화는 이른바 ‘명절용 킬링타임 영화’라 일러도 큰 잘못은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욘사마’열풍과 허진호 식 멜로 스타일이 만난 <외출>과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 만에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온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의 <형사>가 더욱 눈길을 끈다.

이 둘 중 명절용 안전모드인 코미디물(<가문의…>)과 액션물(<형사>)보다 가을이라는 계절에 더욱 힘을 발휘하는 올 가을 첫 한국 멜로인 <외출>이 얼마나 선전할 지가 좀더 궁금해진다. 더욱이 <봄날은 간다>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멜로 아티스트 허진호 감독과 욘사마 배용준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를 발할 지, 아니면 제2의 ‘여친소’(<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가 될 지 미리 살펴보는 것도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두 주인공에게만 집중된 영상, 예전 허진호 스타일과 차이 엿보여

다소 급하게 말하면 <외출>은 아쉽게도 ‘욘사마 열풍 속 허진호 식 멜로는 머뭇거린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허진호 감독의 세번째 장편영화인 <외출>은 교통사고를 당한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주인공 인수(배용준 분), 서영(손예진 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빠져들면서 감정의 혼란을 겪는다는 사랑이야기다.

사랑을 소재로 한 멜로 영화가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이야기 줄기는 크게 두 가지. 사랑의 판타지라는 확대경으로 한껏 부풀려 연인은 물론, 중년에게도 순간의 착각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그 환상의 포장을 들추고, 존재를 탐구하고, 때론 아찔하게 때론 통렬하게 비춘다.

<화양연화>, 그 속편 <2046>을 만든 왕가위 감독은 그 후자에 속하는 감독이고, 이들 영화도 이런 ‘이야기하기’를 드러내놓고 있다.

물론 한국영화 관객들은 일부 마니아를 제외하고 멜로가 가진 이런 이중성을 거부하고 여전히 전자의 멜로물에 손을 들지만.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는 그래서 주목받았다. 즉 판타지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에게 조금이나마 판타지를 걷어내고 존재(인물)를 탐구하려 시도했으니.

TV 드라마 <겨울연가>의 성인버전쯤이라 할 농밀한 통속 멜로의 판타지를 안겨주든, 아니면 기존 허진호 스타일로 사랑의 단면을 풍성한 여백의 세밀한 스케치로 그려내든 그 어느 쪽이든 관객은 만족할 것이다. 거기에다 멜로드라마 퀸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손예진까지.

하지만 <외출>은 아쉽게도 이런 기대를 다소 저버린다. 개봉 전 이미 욘사마 열풍을 앞세워 일본으로 수출해 제작비를 넘어선 73억을 벌어들인 <외출>.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짜이지 않은 점은 ‘허진호‘라는 세 글자를 생각하면 아쉬움 수준을 간단히 넘어선다. 고급멜로, 멜로영화의 예술영화화라는 극찬을 받은 그이기에.

존재에 대한 탐구 빈약…일본 여성관객 겨냥한 느낌 지울 수 없어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관계인 남녀가 배우자들의 교통사고 병상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그래서 죽음과 배신의 순간에 시작되는 또 다른 사랑이 뿜어내는 절박함과 아이러니는 관객의 내면에 가 닿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사랑(혹은 삶 자체)의 주변에 죽음(혹은 사랑의 끝)을 놓아두고 세밀한 일상의 결로 포착하고, 더불어 인물보다 그들을 둘러싼 공간이 인물을 말하는 독특한 공간감을 쌓아온 허진호 스타일.

<외출>에서도 이 스타일은 여전히 보이지만, 전작처럼 효과적이지 않다. 카메라는 종종 두 사람만을 클로즈업하고, 이외 모든 것들은 그저 배경일 뿐이라는 기존 허진호 스타일의 역전도 보인다.

이쯤 되면 한국 관객들은 이 영화가 철저하게 일본 (중년)여성 팬들의 눈높이에 맞춰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제2의 여친소 악몽이 되살아날 듯한.

더욱이 ‘무슨 일 하세요’(인수), ‘집안일 해요(서영)’, ‘어려운 일 하시네요(인수)’,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서영)’와 같은 한류스타의 화사하고 공손한 제스처들도 그렇고, TV 광고 속 다소 억지스런 미소에서 자유롭지 못한 배용준의 연기는 <조선남여상열지사-스캔들>에서 보여준 이미지 변신에서 후퇴한 듯하다.

이렇듯 사랑과 존재에 대한 빈약한 탐구가 느껴지는 이야기 구성자체에서 보여진 빈 틈은 한류스타의 존재감과 영화적 스타일만으로 충분히 극복되리라 과신한 것은 아닐지.

단지 가을과 멜로를 느끼고픈 이들, 허진호 감독의 차기 멜로를 기대하는 이라면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겨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거품이 <외출>에 대한 평가에 제법 묻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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