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이 국가정보원 본부뿐만 아니라 시·도 지부에서도 불법감청이 있었던 정황을 포착하였다고 한다. 즉 김대중 정부시기에 개발되어 사용된 휴대전화 도·감청 장비인 ‘카스(CAS)’를 국정원 지부에서도 신청하거나 장비를 지급받은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시기 국정원 ‘미림’팀에서 불거진 도청파문이 김대중 정부시기로 까지 확대되고 있다. 또한 카스 사용을 할 경우 반드시 첨부되어야 하는 감청영장이나 대통령 승인과 같은 합법적 절차는 생략되고 국정원이 임의로 감청 장비를 사용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어서 충격의 정도는 더해지고 있다. 불법감청 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사건이라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지만, 경남역시 예외는 아니지 않겠는가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권력기관에 의해 임의적으로 진행된 불법감청사건을 두고 과거 독재정권시대의 그릇된 관행이 온존한 결과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불법감청이 스스로를 민주화를 지향하는 정부라고 자칭했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기에도 계속 실재하였다는 점은 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한다. 민주화운동은 국민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전락시켰던 군부 독재정권의 야만과 폭력에 저항하면서 출발하였다. 90년대 이후 등장한 민선정부는 국민을 지배하는 정치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로 그 성격을 바꾸는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평가되었지만, 사회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민선정부들은 자신들의 권력놀음에 빠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불법감청사건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법감청은 타인의 치부를 알면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행사가 그 만큼 손쉬워진다는 전근대적인 통치술에 불과하다. 이런 전근대성은 한국의 정치사회가 정말로 민주화하여야 한다는 반증과 다름 아니다. 지금도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드러날 때까지 끝까지 부인하지만, 공개되는 순간 자신들도 시대의 희생양이었다는 식의 궤변을 일삼고 있다. 그러나 권력자들의 이런 오만불손함에 국민들이 앞으로도 과거와 같은 무언의 인내심을 발휘하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이 불법감청사건을 제대로 밝혀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논설위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