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건설사 직원이 회삿돈 74억원을 돈자루로 실어나르는 황당한 횡령사건이 일어난 뒤 나흘째다. 용의자 안모씨가 일가친척 등에게 나눠준 45억원의 돈을 찾기는 했으나, 안씨 행방은 오리무중이며 여전히 나머지 30억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건설사 및 금융계의 돈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자체감사 및 관리시스템의 재점검이 얼마나 절박한지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물론 벽산건설측은 조합원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잖아도 ‘재건축사업은 복마전’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팽배해있는 터에 이번 사건이 터졌다는 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범행의 과정을 살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도 많다. 우선 금융계의 불감증이다. 안씨는 아파트 중도금을 자신의 농협개인 계좌로 옮기기까지 여러차례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단 한번의 의심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큰 돈을 관리하는 금융계의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짐작케 한다. 또 아무리 추석전 월급지급명목으로 현금배달을 요청했다지만, 74억이면 무려 1톤 분량, 3억씩 담은 돈자루만 26개가 필요하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개 직원의 전화 한 통화로 가능했던가. 벌건 대낮에, 그것도 돈자루로 실어나르게 하는 식의 대담성이 오히려 의심을 사지 않은 요인이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요즘 금융사고가 갈수록 치밀해지고 대담해진다는 추세를 감안하면 금융계는 당연히 확인절차에 신중해야 했다. 또 요즘세상에 월급을 누가 일일이 돈으로 지급하는가. 만일 건설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지급이 이뤄져 왔다면, 이 참에 재고되어야 한다.

건설사의 거액횡령 사건은 형태를 조금씩 달리할 뿐 앞으로도 끊임없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용의자를 잡고 돈을 회수하는 일 못지않게 이중삼중의 자체감사 시스템과 돈관리를 맡는 직원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 등의 대책마련, 또한 돈을 다루는 이들의 윤리성을 점검하는 일도 필요하다. 언론들도 시간추이에 따라 사건을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설계에 툭하면 횡령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파헤쳐 재발방지에 일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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