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끝난 한 드라마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였다.

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이 내뱉는 말들이 보통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이른바 ‘삼순이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외모, 학벌, 배경이 없으면 이른바 주류사회로 진입하기 어려운 현실을 마치 비꼬기라도 하듯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너무나 평범한 보통사람이었다. 또한 평범한 시민들의 삶과 매우 닮아 있는 드라마 주인공의 말과 태도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넘어서서 일종의 통쾌함까지 느끼게 하였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삼순이와 삼식이의 사랑이야기에 온 국민의 절반이 환호성을 내질렀던 이유도 어쩌면 상식이 통하는 평범한 사회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으면서 무지와 야만이 이성으로 둔갑하는 우리사회의 혼란상은 지금 극에 달해있다. 이 장면들을 하나씩 보면 다음과 같다.

1 경제

대기업들이 마치 한국의 전통인 양 자랑하는 재벌구조가 지금 사상유례를 찾기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업을 부실하게 운영하여 IMF라는 경제위기를 가져왔고 국민경제를 혼란에 빠뜨렸던 당시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위기가 지금 닥쳐온 것이다. 이 위기의 주범은 외부가 아닌 자신들 내부에서 촉발된 재산권 분쟁이다. 이른바 듣기 좋은 말로 언론에서 포장해준 ‘형제의 난’이 그것이다. 기업의 전체 주식에서 달랑 몇 %만 가지고도 그 기업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여기면서 친족중심의 기업경영방식을 가장 근대화하고 경쟁력 있다고 주장해 온 사람들에게 두산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제의 난’은 아마도 대재앙일 것이다. 기업자금의 운용을 마치 구멍가게에서 하듯이 한 집안사람들이 떡 주무르듯이 하다가 재산분배를 두고 분란이 일어나 서로가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으로 성에 못 찼는지 이제는 검찰에 고발까지 하는 그야말로 난리를 일으키고 있다. 이 와중에 이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업의 주춧들이나 종사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말 그대로 몰상식과 몰염치는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다.

2 정치

국정원의 불법 도청사건이 지금 온 나라를 들썩이고 있다. 만약 국가의 안보와 안위를 위한다는 국정원이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반국가세력을 도청하였다면, 이 사건은 그리 큰 파장을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이 도청을 한 대상은 한국사회의 주류중의 주류라는 인물이었다는 사실과 이들의 대화내용이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노회찬의원의 도청대화록 공개를 통해 밝혀진 이른바 ‘떡값 검사’파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은 97년 대선자금 수사를 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구도의 전근대적 정치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신선하게 느껴지기보다 진부한 정치적 수사로 다가올 뿐이다. 왜냐하면 지역구도의 정치를 벗어나는 길은 사회개혁이라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제시대의 근대사부터라도 제대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고작 몇 년 전의 사실은 덮어두자고 하는 지 우둔(?)한 중생들은 최고권력자의 그 깊은 속내를 알기가 어려울 따름이다.

3 서민의 삶

지금 서민들은 마치 지뢰밭에 올라선 듯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유가가 연일 기록을 갈아세우고 있다는 보도나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는 보도가 이런 불안감의 근원이 아니다. 생활에서 접하는 현실이 서민들을 불안감에 내몰고 있다. 동네마다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는 작은 가게들이 연일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데,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이런 착잡함과 불안감을 무지와 몽매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오만과 몰상식의 전형일 것이다. 열심히 그것도 모자라 뼈가 으스러질 만큼 일을 해도 영세 자영업자가 문을 닫아야 하고 비정규정직 노동자들은 생계비조차 벌기 어려운 현실을 덮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이런 잘못된 현실은 반드시 고쳐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종래(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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