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백담사 어귀에 자리잡은 만해마을을 다녀왔다. “분단 조국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통일 조국의 밝고 힘찬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생명운동과 평화운동의 진원지인 동시에 민족정신의 함양과 문학예술 창작의 요람”으로서 제 몫을 다하겠다는 이상만큼이나 만해마을은 전체적으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내가 도착한 날, 서울 신라호텔에서는 광복 60주년, 만해 출가 1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평화시인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만해 출가 100주년이란 1905년 만해 한용운이 백담사에 들어가 김연곡 화상에 의해 승려가 된 것을 기리는 것을 말한다. 한편 같은 날, 만해마을에서는 한국시사랑문화인협의회가 주관하는 종교문학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었다. 종교와 문학이라는 주제아래 열린 심포지엄에 문학연구자 말석에 있는 나는 토론자의 입장에서 참여하였다.

설악산 자락 정적깬 축포

다음날, 만해축전의 중심행사라고 할 수 있는 제 9회 만해대상 시상식을 전후하여 세계평화시인대회에 참석했던 문학인들이 만해마을로 속속 도착하고, 평화의 시벽 제막식과 입재식 이후에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세계평화시인대회 참가시인들이 금강산으로 출발한 후, 한국문인협회 주관의 광복 60년 맞이 한국문학인대회가 열렸다. 저녁 시간 이후에는 만해축전 관련 각종 시상식이 줄을 이어 치러졌다.

시상의 본뜻은 만해 사상의 실천과 선양, 혹은 만해 문학을 본보기로 한 문학과 예술의 발전적 계승에 있을 터이었다. 그러나 여느 화려한 리셉션 혹은 이벤트 행사에서 볼 수 있는 시끌벅적한 음악에다가 사회자의 말끝마다 시상금의 액수가 앞세워지는 멘트, 액수가 커짐에 따라 높아지는 환호와 박수에 도대체 이 자리가 ‘돈의 문학과 예술’인지, ‘시정 자본주의 문학과 예술의 잔치'인지 구분이 안 되는 통에 정신을 놓을 즈음, 난데없는 불꽃놀이가 캄캄한 인제군 용대리 밤하늘을 화려하게 뒤덮고 있었다.

설악산의 고요한 정적을 깨고 마구 쏘아 올려지고 있는 축포에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고, 날아 가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뛰는 모습에 나는 참으로 아뜩하였다. 나에게 있어 축포는 설악의 깊은 어둠 혹은 침묵에 깃든 진리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것이었으며, 한 방씩 올라갈 때마다 ‘저것은 돈’, ‘저것은 돈’이었다. 모르긴 해도 기천만원이 들었음직한 축포를 피해 고요한 용대리 막걸리집에서 흐릿한 어둠과 마주하였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만해 한용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관류하면서 국권의 부재, 민족의 빈곤, 역사의 절망을 넘어서 저마다 나름대로의 가치로움을 띠고 세상의 모든 것이 뚜렷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려 입니입수(入泥入水)하여 세상을 혁신하고자 했던 〈님의 침묵〉의 시인. 칼칼한 성정과 빛나는 눈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던 종교인이자 혁명가였던 만해 한용운. 월남 이상재의 사회장 때, 자기도 모르게 발기인 명단에 오른 것에 크게 노하여 철필촉이 똑 부러지고 종이가 뚫어지도록 성명 3자를 말소하던 이. 까닭은 3·1운동 당시 월남이 참가를 거부했던 터에 있었던 것.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 장래 나랏일로 담소할 때, 건국하는 날 남한인과 일인도 관여할 수 없는 오직 서북인만이 나라를 전담해야 한다는 편협한 주장을 책하고 절교 한 이.

만해의 삶 생각하다 ‘식은땡

돈이 한 푼 없어 시장하면 손수 부엌으로 나가 물을 긷고 불을 지펴 고구마를 쪄다 놓고 먹었던 이. 걸승을 보고 “걸식은 비록 보살 만행의 하나이나 만행에서 9999행을 몰각하고 하필 걸식 일사(一事)만을 택했는갚라고 꾸짖던 이. 젊은이들이 찾아와 독립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하면 어디서 나온 돈인지 건네주곤 하였으나, 정작 선생께서는 냉돌의 차디찬 방에 기거하며 고구마마저 삶은 지 오래되어 솥뚜껑에 거미줄이 내려앉은 채로 버티던 이. 오랜 지병이 악화되었다고 하나, 사실은 중풍과 거듭 겹친 영양실조로 돌아가신 이. 돈이 넉넉지 않아 망우리 공동묘지에 조그마한 분상 하나 마련하고 봉선사 운허스님이 지어 올린 비문 하나만을 남긴 이.

8월 2일부터 19일까지 펼쳐지는 만해축전을 두고 “10억이 들었다”, “아니 더 들었다고 하더라” 라는 말을 들으며 막걸리를 마시던 그 날 새벽녘, 100년 전 백담사 선방에 들은 만해의 가슴에 꽂혔을 시퍼런 바람 한 자락이 나의 등줄기에 식은땀처럼 흘러내렸다.

/이성모(문학평론가,마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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