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은 식량 이전에 ‘힘’ 이다”

지역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원 원장을 만나기로 한 곳은 다름 아닌 창원 용호동의 청국장집. 저녁시간 낡은 상가의 작은 청국장집에서 박현효(65) 창원문화원장을 만났다. 가게로 들어서니 지팡이를 짚은 신사가 앉아 있다. 식구를 맞듯 반갑게 맞아들이고는 “맨날 먹던거로…”라는 말로 주문을 대신한다.

▲ /김구연 기자
예전에는 지역의 문화행사를 문화원에서 다 했을 정도로 문화원의 역할이 컸다. 문화원은 지금도 향토 역사를 발굴하고 사료를 수집해 책 발간을 한다. 또 향토사 자료를 탄탄하게 하고, 지역민에게 내 고장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국적인 사고를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싸고 푸짐한 전통음식…된장 종류는 다 좋아해

이 외에도 향토문화와 관련된 지역축제를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 역사와 특성이 배어나게끔 이끈다. 이 탓인지 박 원장의 입을 통해 쉴새 없이 해박한 지식과 지역문화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무궁무진하게 쏟아진다.

한창 이야기 하던 중 음식이 나온다. 9가지의 밑반찬과 가운데 청국장 뚝배기가 보글보글 끓는다. 쌈과 쌈장 대신 촌 된장이 나온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정식이다. 반찬도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이 맛깔스러워 보인다.

박 원장은 고고학·발굴·역사학자들이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박물대학 강의를 위해 내려 왔을 때 지나는 길에 들렀다가 이 집 단골이 됐단다. 같이 온 사람들도 모두 이 집 청국장 맛에 반해 두 그릇씩 뚝딱 비웠다.

한번 맛을 안 학자들은 창원에 올 일이 있으면 이 집에서 청국장을 먹겠다고 벼르고 올 정도라고 한다. 박원장은 싸고 푸짐하며 전통음식이라 더 좋다고 웃으면서 “신기하게도 이집 청국장은 냄새가 나지 않아 먹기 좋다”고 말한다.

된장 종류는 다 좋아한다며 밥 한 공기를 후딱 해치우는 박원장. 음식을 원래 빨리 드시냐고 물으니 “이거 뭐 몇 숟갈 되지도 않는거”라고 말한다. 성격이 시원시원하다.

“땡기는 대로 먹어야 한다”. 박 원장의 음식에 대한 지론이다. 몸은 자정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입이 원하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건강을 생각해 음식을 너무 싱겁게 먹으려는 경향을 지적하며 여름에는 염분을 보충해 줘야 일사병에 걸리지 않으며 힘도 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육체노동으로 땀을 많이 흘리는 농부가 먹는 시골 음식이 짤 수 밖에 없으며, 군인이 수통에 소금을 넣는 것을 예로 든다.

짠 음식을 먹더라도 자연히 물이 먹고 싶으므로 입이 ‘땡기는’ 대로 먹으면 자연스레 정화가 된다고 나름대로의 음식철학을 드러낸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국장의 어원을 청나라 할 때 ‘청’자와 누룩 ‘국’자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박원장은 전쟁의 ‘전’자와 나라 ‘국’자를 써서 ‘전국장’으로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청국장은 북방 기마민족 음식으로 보이며 따라서 고구려 발해인이 먹은 우리의 전통발효음식”이라고 말한다. 몽고는 유목민족이라 발효가 아닌 유산균이 발달된 점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전쟁이 잦던 시절 고구려 병사가 가장 기력을 내는 음식인 콩을 삶아 말 안장에 넣어 전장을 향해 사나흘 동안 갈 때 말의 체온으로 자연히 발효된 것이 청국장이라는 것이다. 식량 이전에 ‘힘’의 음식으로 출장시 제일먼저 챙기는 품목이 콩이었다고 한다.

박 원장은 콩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해 여름에는 부인과 집에서 콩국수를 같이 만들어 먹기도 한단다.

그는 “문화 중에서도 음식문화가 민족성을 절묘하게나타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며 한·중·일 세 나라의 음식문화를 구분한다.

중국은 철기문화가 발달해 쇠기구를 이용한 기름에 튀기는 음식이 발달했고, 일본은 목기 문화가 발달해 나무통을 이용한 단무지 같은 절인음식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토기문화가 발달해 도자기를 이용한 발효식품이 발달했다. 김치나 젓갈류 장류 같은 젖산문화가 발달한 이유다.

   
고구려 시대 전쟁터서 기력내려 먹던 것이 시초


박 원장은 얼마 전 경남문화진흥원의 위원으로 위촉돼 지역문화 진흥을 위해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리 것부터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히 우리지역 것부터 알아야 하고, 지역 예술인 것을 봐주고, 지역의 문화행사에 관심을 많이 가져줘야 지역문화가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지역문화를 알아야 그 문화를 바탕으로 탄탄한 문화 인적 기반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새로 짓는 문화원사에는 지역의 문화인들이 싸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박 원장은 현재 있어도 사용 못하는 대형 공연장과 달리 250~300명 수용할 수 있는 아담한 규모의 소극장을 지어 돈 없이 열정만 갖고 예술을 하는 지역문화인들이 맘껏 공연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단다.

지역문화계의 원로로서 진정한 지역문화를 생각하는 그의 말이 청국장처럼 구수하고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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