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협상 국회비준과 관련하여 정부는 지난 6월 20일 농민들의 저항에 직면하면서 이후 농민단체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하여 종합적인 농정의 틀을 제시하겠다고 발표 했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이해찬 총리주재의 고위 당정협의회를 통하여 조속히 쌀 재협상 비준안을 통과시키는 조건으로 공공비축 물량의 확대와 농가부채 경감대책을 실시하는 것을 합의 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이 발표를 접하면서 다시 한번 정부의 태도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농민들이 요구한 식량주권, 지속가능한 농업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한 채 마치 농업을 자신들의 흥정거리로 취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의 농업에 대한 인식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8월 초 밀양대학에서 개최된 영남지역 농정포럼에 방청객으로 참석을 했었다. 이날 한국농촌 경제연구원의 전 원장인 이정환씨가 기조 발제를 하였다. 기조발제의 주요내용은 쌀소득보전 직불제가 역사상 획기적인 제도라는 것과, 우리나라가 쌀 재협상을 8%대에서 마무리 한 것은 아주 잘된 협상이며, 향후 2014년까지 쌀 80kg의 가격이 12만원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내용이 이 전 원장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국책 연구기관의 장을 지낸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의 의견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쌀 재협상이 8%대에서 이루어진 것이 매우 잘된 협상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는 이 전 원장의 학자적 양식마저 의심케 하는 내용이다. 이 전 원장은 작년 농촌 경제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농경연의 공식입장을 ‘7.67%를 초과하면 관세화로 가는 것이 유리하다’며 협상내내 주장해 왔다. 그런데 불과 일년도 되지 않아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결정을 그 조직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조직의 주장을 부정하는데 농민들과 국민들이 과연 무엇을 믿고 판단해야 할까.

또한 국민들에게 쌀소득 보전직불제가 마치 농민들에게 농업소득을 그대로 보전해주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 농자재 가격의 상승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준가격 17만원보다 쌀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하락분의 85%를 보전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 3년마다 기준가격을 다시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 결국은 쌀 가격의 하락을 전제로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은 이러한 내용의 본질을 알리기보다는 이 제도를 도입하면 농민들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처럼 선전하면서 농민과 국민사이를 이간질시키면서 그 책임이 농민들에게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렇듯 농민들의 농업에 대한 요구가 정부와 언론을 통하여 농민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농민과 국민들을 노골적으로 이간질하고 있다. 쌀 재협상문제, 지난해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 투쟁의 본질은 숨겨 진 채 농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투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것으로도 모자라 농민들에게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이 농업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하도록 정부가 나서서 농업의 아니 농민의 부정적인 면을 언론을 통해 부각 시켜 놓고 그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는 농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처럼 농민들의 요구는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척 하면서 정작은 농민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배제하고 있다.

국민들이 인식하기에 농민들의 요구가 과도하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농민의 요구는 너무도 소박하다. 농민들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는 수준의 농사를 계속적으로 지을 수 있는 수준의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농업이 사라졌을 때 지불해야할 대가 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금당장의 이익을 앞세워 농업을 돈 안되는 사업으로 치부하고 농업의 근본적인 틀을 깨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석유의 교훈을 절감해야 한다. 세계의 농지와 생산성은 한계가 존재하고 기상의 변화에 무대응인 것이 농업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정현(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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