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에 일년에 두 번 경찰이 와서 할머니를 불러 무언가 조사를 하고 다녀갈 때 무슨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할머니께서 꽤나 불편해하시며 속이 상해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 다녀간 경찰이 괜히 밉기도 하고 했다.

고등학교 들어갈 즈음에야 안 일이지만 외할아버지께서 전쟁 때 월북한 일로 계속 경찰의 감시를 받아왔던 것이다. “편지가 왔느냐? 누가 다녀가지는 않았느냐?” 매번 똑 같은 질문에 할머니도 매번 똑 같은 대답을 하셨다. “죽었으니까 편지도 없고 다녀가는 사람도 없지!”

북측대표단의 현충원 참배

할머니에겐 그렇게 다정다감했다는 할아버지도 월북 이후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원망의 대상이 되고 가족의 출셋길을 막는 ‘웬수덩어리’로 변해갔던 것이다. 박정희 시절이 끝나고 전두환 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집에 들락거리던 경찰의 걸음은 끊겼다. 연좌제가 폐지됐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세상은 조금씩 변해갔다.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무소식에 조금씩 희망을 갖기 시작하셨다. 83년 여름 할머니의 시선은 KBS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서 떠날 줄 몰랐다. 그리고 6·15공동선언 이후 본격적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면서 할머니의 간절한 요청에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냈다. 그리고 어제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어울려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셨다.

할머니는 젊어서 북으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반세기가 넘게 통일을 기다리셨다. 그토록 오랜 통일의 염원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벌써 남과 북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합창을 하며 외쳐 댄지도 오래지만 아직도 남과 북이 자유로이 다닐 수 없는 세월이다. 다만 이제 한번씩 치매를 보이시는 할머니께서 TV를 통해 통일의 가능성만 읽고 계실 뿐이다. 어디 이런 분들이 우리 할머니 한 분 뿐일까. 벌써 가슴에 한을 품고 돌아가신 분들도 수없이 많을 터이고 이제 만나려야 기력과 정신을 놓아버려 만날 수도 없는 분들도 많을 터이다.

14일 북측의 통일축전 방문단 일행이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통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엄청난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제 통일 다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성급한 판단일지 몰라도 아흔을 바라보시는 할머니에게나 이산의 아픔을 속으로 삼키시던 많은 분들에겐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적’의 영령을 위해 묵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적’을 위해 명복을 비는 것은 더 소중한 무엇을 위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산가족 아픔 치유가 먼저

그런데 북측의 현충원 참배를 두고 한나라당이나 재향군인회 등 일부 보수단체는 영 마뜩찮은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현충원 참배는 일단 환영하지만 북한 특유의 심리전일 수 있다”고 경계했고 보수단체 몇몇 사람들은 “북한 이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충탑 참배한 것을 반대하고 북한이 참배를 이용해 남한 내 이데올로기 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현충원에 참배하는 것이 북측 특유의 심리전이고 남측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행동이라고 의심하고서야 어찌 통일을 바란다고 이야기하겠는가. 만약 우리가 북에 가서 참배한다면 북의 이데올로기를 교란하기 위한 고도의 속임수를 가졌다고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의 의심은 결코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부 보수 정당이나 보수단체가 알아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북측 대표단이 한 때 ‘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영령 앞에서 묵념을 했고 남측 또한 북에 가서 금수산 기념궁전과 혁명열사능을 참배 못하란 이유 없다.

상호 참배가 국가전복의 목적을 가졌다는 확증이 없는 한 불필요한 의심은 접는 게 좋을 듯하다. 어차피 우리는 통일을 위해 이만큼 달려왔고 여기서 멈출 이유도 없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이산의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사시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조금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동안에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오랜 세월 연좌제의 고통으로 멍든 가슴과 수많은 나날을 그리움으로 삭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치유하고 돌아가실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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