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열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를 생생하게 느끼는 사람도 드물다. 3·15의거의 함성을 간직하는 노년층은 그렇지 않겠지만, 대다수 청장년층은 그저 김주열 열사를 역사인물 정도로 여길 따름이다.

그런데 요근래 김주열 열사를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지난 3일 창원지법 315호 대법정에서 열린 김정부의원 부인 정화자씨에 대한 ‘선거법 위반’재판이다. 재판부는 이날 정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정씨가 저지른 범죄를 김주열 열사와 연결시켰다.

재판장의 발언을 다시 옮겨보자. “지금은 국가 권력이 시민사회를 압도하지 못하고 누구나 신변 위험 없이 비판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되기에는 많은 희생이 있었는데 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맞섰던 마산 3·15의거 와중에 숨진 김주열‘님’이 대표적이다.”

재판정에 등장한 김주열 열사

금권선거를 질타하는 목소리에 오버랩된 열사의 ‘처참한 얼굴’. 시인의 말처럼 재판부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다시한번 살아있는 꽃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얼굴은 기자를 숙연하게 했다. 아마 그날 방청석에 있었던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으리라!

최근들어 창원지법 재판정에서 속시원한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한 지인은 이를 ‘낭랑한 목탁’에 비유했다.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무언가가 들어있다는 이야기다. ‘열사의 혼이 서린 고장에서 부정선거라니?’하는 질타만 있는게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이유가 ‘당시 아테네 사회에서 도주란 고발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라는 법감정이 반영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상식(?)을 획득하는 기쁨도 있다.

10일 열린 황철곤 마산시장 뇌물사건 선고공판에서는 “이성은 두 사람의 정신을 요구한다”는, <법의 정신>에 있는 문구가 인용됐다. 재판정에서 몽테스키외를 대면하다니! 덕분에 옛 지식창고를 다시 뒤적이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판결할 때 재판부가 그 의미를 설명하는 일은 낯익은 풍경이 아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법원과 보통 사람 사이엔‘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두터운 장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뿐이랴? 큰 소리로 말하면 권위가 손상된다고 생각해서인지, 법관 홀로 웅얼거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올들어 법정에 가본 일이 없어서 장담할 순 없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하건대 아마 이 관행은 아직까지 어느정도 계속되고 있는 듯 하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강고한 원칙은 다른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변명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곤란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곧잘 응용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더이상 묻지 마세요! 성명에 담긴 문구 그대로예요!” 마치 그렇게 하는게 정당하다는 듯이.

법원이 내린 법적 판단이‘판결’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것이 거기에 담겨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형 사건의 경우, 개개인이 그 깊은(?) 의미를 곱씹기는 무척 어렵다. 사람들이 우매해서가 아니다.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건에 머리를 써가며 의미를 분석하려는 이가 드물다는 뜻이다. 알면 좋고, 몰라도 그뿐이다. 실제로 딱딱한 판결에 담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함의’를 깊이있게 풀어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층 두터워진 신뢰

이럴 때 판결을 뒷받침하는 몇마디는 흡사 친절하고 자상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내가 꼭 저런 소리를 하고 싶었다”는 대리만족도 가져다 준다. 정화자씨에 대한 재판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만하다. 입만 열면 3·15를 부르짖으면서도 행동은 3·15를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창원지법이 울린 ‘경종’은 정말 흔치 않은 감동이었다.

탈권위가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에 수긍하면서도, 그 실천현장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다들 말로만 탈권위를 떠들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창원지방법원의 최근 행보는 탈권위의 전형이라고 할만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래서 법원의 권위가 더 높아지고 신뢰가 두터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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