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거창국제연극제를 관람했다. 프랑스 아비뇽연극제에 버금간다는 ‘명성’에 대한 기대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영화나 비디오같은 ‘복제문화상품’보다, 살아있는 배우들의 열정이 깃든 몸짓을 느끼고 싶어서, 지역과 국제는 또 어떻게 조화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미흡한 행사운영 ‘유감’

우선 공연 자체는 즐거웠다. 가족들이 함께 본 유료공연 <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의 하녀>는 밀양연희단 거리패의 소문난 실력이 거짓이 아님을 그대로 확인시켜주었다. 발군의 연기력에다 춤과 노래실력까지 겸비한 배우들은 공연내내 600여 관람객을 흥분의 도가니속에 빠져들게 했다. 무료공연들도 축제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브라질의 종교의식을 주제로 한 보이붐바팀의 민속무용극은 의상과 춤 모두가 열정적이어서 관람객의 박수갈채를 절로 이끌어냈고, 러시아 메치타 팀의 민속무용극은 준비가 치밀했다는 인상을 주는데다 깔끔하고 이국적인 재미를 주었다. 독일 스타피큐렌팀의 거리극도 의미있었고, 배뱅이굿도 국악에 대한 또 다른 흥미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운영이 매끄러웠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로미오~>의 경우 간간이 조명이 배우 움직임을 확실히 따라잡지 못했고, 특정배우의 마이크는 한참 작동이 되지않기도 했다. 브라질·독일·러시아 팀의 공연은 몇줄의 말로 요약된 팸플릿설명이 고작이어서 그냥 눈으로 즐기는 것 밖에 되지못했다. 이왕이면 극 시작 전에 관계자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었더라면 진정한 문화교류의 의미가 되었으리라 본다. 특히나 브라질공연은 공연내내 내레이션이 이어졌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야 장단이라도 맞추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배뱅이 굿판에서는 뜬금없이 관객수준을 탓해 야단 맞는 기분으로 앉아있어야 했다.“관객수준이 꽝”이라는 말을 한번도 아닌 여러번 반복해 들으니, 배뱅이 굿의 맛은 사라지고 씁쓸한 불쾌감만 남았다. 그는 왜 관객들 호응이 적은 지를 생각해보았을까. 본격적인 배뱅이굿 전에 국악인들이 창하는 소리는 마이크가 필요없었음에도 마이크를 들이대어 귀가 따가웠다는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부대행사도 이왕 운영할거면 좀 널찍이, 풍성하게 하는 게 좋지않았나 싶었다. 각종 체험부스는 너무 협소하고 다른 체험장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도자기굽기 체험부스는 달랑 하나에다 너무 작고 그나마 책임자를 찾기도 어려워 체험할 기회를 주지않았다.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무대설치나 수승대일원의 관리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대목이 적지않았다. 구연서원이라는 문화재내에 극장을 설치한 점은 언뜻 납득되지않았다. 거창연극제 관계자는 행사기간동안 연극을 보러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관객들 입장은 다르다. 문화재자체를 보러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어떤 이는 문화재에 무대가 설치되어 어이가 없더라는 말을 했다. 불가피하게 그곳에 설치할 수 밖에 없었겠지 이해해주고 싶다가도, 서원내에 취사도구나 짐꾸러미가 나뒹구는 모습을 보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주차장이 엄연히 있는데도 무대가까이 까지 차량을 주차한 점이나,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악취를 풍기는 점, 쓰레기가 하루하루 치워지지않고 있는 듯 쓰레기차가 수승대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관람분위기를 망치는 요소였다.

다시 한번 ‘관객’ 중심에서

그 중에서도 가장 유감스러웠던 대목은 좌석제를 하지않는 점이다. 모름지기 국제적인 행사인데, 관객이 그토록 많이 몰리는데 좌석제를 않는 건 왜인가. 관객수 집계나 입장료수익 등 경영상태의 투명성을 위해서도 이젠 도입돼야하는 게 좌석제아닌가. 1시간 넘게 줄서서 다리아파 행사 안내자에 물었더니, 그녀 또한 좌석제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저희들도 수차례 건의해오고 있거든요. 그런데 반영이 안되네요. 이번에도 꼭 높으신 분들께 건의하겠습니다.” 그녀가 힘주어 말한‘높으신’ 분들은 반드시 실무진의 의견을 참고하기 바란다.

거창연극제는 험난한 길을 17년째 의미있게 걸어왔고, 이젠 궤도에 올랐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칭찬이 넘칠수록, 관객이 늘수록, 놓치고 있는 바는 없는 지 체크해야 한다. 철저히 관객위주로 사고하고 준비해야 한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야외공연이니만큼, 비가 잦은 여름날의 행사인만큼, 더욱 주변환경에 신경을 많이 써야만 축제다운 축제가 된다. 행정기관의 지원도 이런 점에 집중돼야 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