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진상조사는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궁금증을 풀어주는데는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문화적 핵심사항은 비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욕구불만의 첫 번째 유혹은 무선통신, 즉 이동전화 도청불능이라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비양심적인 권력이 나쁜 생각을 가지면 못할 짓이 없다고 믿는다. 이동전화를 만들어내는 기술력이 있다면 그에 버금가는 감청 기술력 또한 보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이동통신 도청 불가능한가

전문가들의 견해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국정원은 손사래를 쳐가며 극구 부인한다.

<이통 도청 과연 불가능한가>앞으로 불법도청을 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해도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의 해명이다. 권력이 필요로 할 경우 언제든 가능할 것이라는 잠재적 정서는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이번 해명이 함량미달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특단의 소명자료를 만들어 공개함으로써 대중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두 번째 허허로움은 책임자 부재에서 발견된다. 국정원장은 역대 정권의 수뇌부는 말할 것도 없고 원장 자신조차 불법도청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는 하부조직이 윗선도 모르게끔 은밀하게 올빼미 그물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현재 드러난 것은 국정원 국장, 과장, 미림팀의 연결고리에 대한 윤곽이 전부며 조금 더 발전된 것은 중간과정인 과장을 배제시킨 국장 직보체제의 확립이다. 여기에서 수집된 비밀정보가 차장에게 보고된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그 다음은 미궁이다.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정부산하 정보기관이 왜 법을 어겨가며 도청을 일삼아 왔느냐 하는 것 하나뿐이다. 공개된 테이프의 내용만 보더라도 너무 어마어마해서 권력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권력을 가진자나 계층이 그런 최고급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군부독재가 불법도청을 통해 정적이나 야당탄압을 일삼는 도구로 악용했으리라는 추측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영삼 문민정부나 김대중 국민의 정부시절 과연 그 정보들이 어떤 순환작용을 일으켰는지 매우 궁금하다. 그러나 그 보다는 누가 실체의 위치에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모르고 원장도 파악치 못한 불법 도청팀을 누가 운용해왔는가 하는 것이 이번 사태의 최고 관심사임이 분명하다. 국정원 국장이나 차장급 인사들이 독단으로 월권 부담을 졌을리는 희박한 것이다. 적어도 권력의 핵 속에 똬리를 튼 막강실세가 존재할 확률은 100%에 가깝다.

그러나 국정원 조사발표는 그 근처에도 못 간다. 실제 미림팀은 명령기관에 의해 움직인 꼭두각시요, 깃털일 뿐이다. 명령의 꼭지점에 누가 서 있었으며 권력에 아부하여 불법을 예사롭게 저지른 중간 탐욕자들이야말로 국법질서를 농단한 주모자들이요, 몸통이다.

<외과적 처치로는 안된다>언제나와 같이 베일을 벗겨낼 역할은 검찰 몫이다. 그러나 언제나와 같이 송사리 몇 마리를 포획하는 수준으로는 진실을 알고자하는 대중의 갈증을 씻어줄 수 없다. 테이프 내용 속에 휘말려버린 검찰 자신의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불법도청의 전모를 밝혀내는데 견마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아야 할 차례다.

외과적 처치로는 안된다

도청을 준법화 하기 위한 법적 권한은 법원이 갖는다. 국가기관도 법원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이유로도 개인의 통신비밀을 엿들을 수 없는 것은 상식이다.

정보기관이 그들의 고유업무와는 상관없는 정보수집을 목적으로 불법도청을 자행한 것은 사법권위마저 묵살한 범죄행위로 지위고하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단호한 조처가 범죄예방을 완결시킬 수는 없지만 전례의 경고적 의미는 가볍지 않은 것이다. 이번의 정보재앙이 장기간 잠복된 병마일진대 아마도 골수까지 미쳤을 터, 외과적 처치만으로 안녕을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깨닫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윤석년(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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