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면서 넓고 평편한 땅, 준말은 '덕'


순수 우리말 ‘더기’는 상당한 높이를 가지면서도 비교적 연속된 평탄한 표면을 이룬 지역으로, 높으면서 넓고 평편(平便)한 땅을 말한다.

본래말이 ‘덕’인지, 준말이 ‘덕’인지는 옛글에서 그 용례를 찾지 못했다. 조선어사전이나 국어대사전에는 ‘더기’의 준말로 ‘덕’이라고 기록돼 있다.

‘번더기’(경상방언)에서 ‘더기’는 덕+이, 이은소리로 되어 ‘더기’로 굳어진 것 같기도 하다. 또 낱말이 불안정한 상태로 있지 않으려는 성질 때문에 음절이 첨가된 것으로도 본다. ‘언덕’ 또한 이 준말 ‘덕’에 한자 ‘언’(堰:땅)과 합성하여 ‘언덕’이 된 것.

‘더기’를 그냥 ‘언덕’쯤으로 연상하기 쉬운데, ‘언덕’은 땅이 비탈진 곳, 나지막한 산, 구릉(丘陵)이고, 이 언덕을 오르거나 넘어서면 갑자기 나타나는 넓고 평편한 곳이 ‘더기’이다.

하늘 아래 땅이 있으니, 사람들은 땅을 딛고 더 높은 곳에 올라보기를 시도하는 것 같다. 한발 한발 내디뎌 오르는 걸음, 가쁜 숨 몰아 쉬며 오르는 길에 홀연 시야가 탁 트이며 전개되는 광활한 곳, 그런 곳이 있음이 신기하고, 그렇게 편안하고, 마음 푸근하고, 정다울 수가 없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더기’는 마을 뒷동산 산자락 언덕바지 위거나 또는 높은 산에 위치하기도 한다. 자기 땅뙈기가 없는 농부는 ‘더기’를 일궈서 ‘더기밭’을 만들어 무.배추 따위 남새를 심어 가꿔 먹기도 하였고, 비교적 높은 산의 ‘더기’에는 목초지로 소나 양을 놓아 기르기도 하였다.

경남지역만 하여도 지리산의 세석평전, 밀양 재약산의 사자평, 산청 황매산의 철쭉밭, 마산 무학산의 서마지기, 창녕 화왕산의 억새밭 등이 높은 곳의 ‘더기’로 한번 올라서 보기를 사람들은 바란다.

‘더기’의 넓이는 작게는 시골 부잣집 바깥마당만 하기도 하고 크게는 수천에서 수만평이 되기도 한다.

“마을 뒤의 더기에서 덩덕궁 장구 북소리를 신호로 봄놀이가 벌어진다”, “소년시절 놀았던 산, 더기에 서서/ 한 노래 부르니, /옛 생각이 아득하다”에서 사람들은 눈과 귀로, 냄새와 스치는 대기로, 오감을 통하여 ‘더기’를 느껴볼 일이다. 무릇 말에서는 그 말과 함께 분위기와 느낌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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