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다 다카시-고길희 지음ㅣ지식산업사

그는 일본인들에겐 정치문제에 비겁한 태도를 보이는 ‘겁쟁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에게는 한때 ‘일본의 양심’으로 존경받은 인물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 한국인일 수도 일본인일 수도 없었던 ‘경계인’하타다 다카시.

▲ 1983년 도쿄에서 찍은 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가지무라 히테키, 하타다 다카시, 강만길, 강덕상, 뒷줄 오른쪽부터 박종근, 미야다 세쓰코, 야자와 고스케, 박경식.
마산에서 태어났고 인생의 하반기 46년동안 조선사학자로 활동했는데도 경남, 아니 마산사람들조차 아무도 이 일본인을 알지 못한다.

한일 수교 40주년인 올해, 일본 안에서는 개악된 역사교과서 채택 반대운동에 많은 인사들이 악전고투하고 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 한국인들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한 일본. 그 일본의 피가 흐르는 하타다 다카시에게 한국인이 주목하는 이유가 이 책 속에 있다.

하타다 다카시는 1908년 마산에서 일본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를 마산에서 마치고 부산중학교를 나와 일본 구마모토에 있는 제5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 마르크시즘 세례를 받고 도쿄대학 동양사학과에서 공부하던 그는 사회주의운동권에 돈을 준 것이 발각돼 구속되었다.

▲ ▲ 하타가 다카시가 쓴 <조선사> 표지와 <일본인의 조선관> 한국어 판 표지.
그 후 식민사관에 투철한 우파 교수의 도움으로 풀려났고, 결국 만주 대련에 있는 일제의 대륙침략 싱크탱크인 만철 조사부에서 5년동안 근무하다가 일본 패망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중국에 더 남아 3년동안 중국 국민당 쪽에서 일하다가 1948년 일본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전후 일본은 그에게 서먹서먹한 조국이었고, 가까스로 오사카 변두리의 중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일하게 된다.

오사카는 가난하고 차별받는 조센진(한국인)이 많은 도시였고, 그때 조센진들은 차별대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하타다는 조선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조선인의 처지를 생각해보지 않는 ‘식민지의 아들’일 뿐이었다.

때문에 조선인은 차별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의심도 하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마산에서 조선인 남녀노소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을 보고서도 그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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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다가 조선인의 문제를 보기 시작한 것은 1948년 일본에 돌아갔을 무렵이다. 자신의 처지가 일본에 있는 일본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문제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타다가 일본인들에게 배척당하고 한국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떠오른 이유는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조선사>라는 책을 펴내면서부터다. 이 책이 나오자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독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 때까지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황국사관에 젖은 것 뿐이었는데 하타다의 책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하타다는 1959년 일본의 조선사 연구자들과 '조선사연구회'를 만들어 조선사의 과학적 연구와 조선과 일본 두 민족의 친선을 모토로 연구활동을 펼쳤다.

그는 태어난 조선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뜻에서 이진우 소년 구명운동, 김희로 구명에도 적극 가담했고, 1960년대 초 한국에서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역사학자들이 동참하자 그도 일본의 역사학자들과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한다.

1965년 한일수교가 결정됐을 때 그는 일본인의 잘못된 조선관을 고치려고 <일본인의 조선관>(1969년간)이란 책을 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역사교육에 관한 글들을 발표하는데, 1969년부터는 일본의 세계사 교과서를 분석 비판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1972년에는 일본 사회과학자 대표단의 부단장으로 초대받아 평양에도 다녀왔다. 그는 남북한을 가리지 않고 일본에 온 학자들과 사귀었다. 한국의 이기백, 이우성, 강만길 등 국사학자들과 깊이 사귀면서 일본인들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꾸려고 고심했던 양심있는 인간이었다.

지은이는 하타다를 두가지 관점에서 바라본다. 첫째는 조선은 하타다에게 삶의 원점인 고향이었다는 점, 둘째는 조선사 연구자인 하타다에게 조선은 자기 연구의 주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하타다의 식민지 지배 책임에 대한 자각과 청산에 관한 문제, ‘경계인' 하타다의 정체성 위기와 극복문제이다. 하타다가 고민했던 삶 속에서 한일관계를 다시 조망해보자는 것이다.

지은이 고길희씨는 “그동안 한일관계사는 주로 제도사, 경제사, 정치사 등 지배와 피지배, 차별과 피차별, 억압과 피억압처럼 이분법적 사고의 거시적 차원을 중심으로 언급돼왔다”며 “개인의 체험이나 삶에 초점을 맞춘 생활사와 정신사 같은 미시적 차원은 상대적으로 간과돼 왔다”고 지적한다.

고씨는 또 “하타다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이제는 한국과 일본, 한국과 재일교포, 일본사회와 재일코리안이란 삼자의 관계도 살펴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살아온 재일교포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재일교포 사회의 과제를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고 피력하고 있다. 지식산업사. 400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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