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를 다룬 영화 '꽃잎'

5월이다. 21년 전 이때, 광주에서는 학살이 일어났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에게 무장한 계엄군이 총알을 퍼부었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80년 5월 광주.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모든 것이 그대로 멈췄다.

2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5월 광주에서 자유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살아 남은 이들은 죽은 이들에게 죄스러웠고,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의 주술에 사로잡히거나 광주의 엄청난 무게를 견디지 못해, 5월 광주를 형상화하는 예술 작품도 거의 없었다.

<꽃잎 designtimesp=18367>,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하나뿐인 영화. 96년 장선우 감독이 이정현과 문성근을 주인공으로 세워 만들었다. 그날 그때 광주에 왔다가 어머니는 총알에 쓰러지고, 스물스물 흘러나오는 피를 보면서 이정현은 꽉 잡은 어머니의 손을 풀고 살기 위해 달아난다. 오빠는 시민군으로 나섰다가 죽었으며, 이정현도 매장되기 직전 정신을 차려 겨우 살아난다.

이정현은 미쳐 떠도는 15살 짜리 소녀다. 절름발이 떠돌이 노동자로 나오는 문성근을 따라다닌다. 문성근은 이정현이 귀찮아 때리거나 욕을 퍼붓거나 내다버리거나 한다. 심지어는 겁탈을 하기까지 한다. 나무 밑에서, 뒤집어 엎어놓고 엉덩이를 치켜들게 한 뒤 제대로 벗지도 않은 채 거칠게 다룬다.

두 번째는 전혀 다르다. 첫 번째가 폭력이라면 두 번째는 동화(同化)를 향한 출발점으로 읽힌다. 문성근은 소녀를 자기 거처에서 쫓아내려고 학대하다가 이정현의 옷을 벗긴다. 순간 이정현은 발작을 일으켜 채 여물지도 않은 젖가슴을 흔들며 마구 비명을 지른다. 문성근은 자리에 누이고 소주를 먹여 진정시키면서 안아준 다음에 한다.

아직도 어리기만 한 이정현을 위해 이때부터 문성근은 신발.옷.거울 따위를 장만해주고 물을 데워 목욕.양치질을 시켜 주기도 한다. 때때로 짓밟거나 때리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쫓아내지는 않는다. 이정현의 쓰리고 아픈 경험.기억을 알고 연민하는 것이다. 소녀는 무덤가에서 더욱 미쳐 떠돌다 죽고, 떠돌이 노동자는 소녀를 그리며 찾는다.

“무덤가를 지날 때, 강가나 거리 모퉁이에서 찢어지고 때묻은 치마폭 아래로 맨살이 보여도 못본 척 지나치십시오. 무서워하지도 말고 무섭게 하지도 마십시오. 그저 잠시, 관심 있게 봐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꽃잎’, 상처에서 흐르는 피이기도 하고 피어나는 앞날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꽃잎은 지금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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