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예술도 사랑도 학문도,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 일은 없다. ‘벽(癖)’이 있는 사람만이 불광불급의 세계로 다가가기 쉽다.

흔히 어떤 한 부분에 광적인 열정을 내뿜는 이들을 ‘벽(癖)이 있다’, ‘벽(癖)에 들린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벽(癖)’이 사람의 욕심과 만나면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번진다. 그야말로 미치광이로 변한다.

`벽(癖)’이 독창적인 정신을 갖추고 전문적인 기예를 익히는 능력이라면 미치광이의 ‘벽(癖)’은 치기(稚氣)이다.

MBC TV <음악캠프> 생방송 중 성기를 노출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펑크그룹 럭스가 성기 노출 계획을 방송 전에 이미 인터넷에 알렸다고 한다. 한 네티즌은 “(성기노출은) 짜고 한거 맞다”며 “홍대 앞에서 공연하는 친구에게 뭐하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오늘 럭스라는 밴드가 TV에서 성기를 내놓는대서 그거 보려고 집에서 기다린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생방송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면 성기 노출 순간 럭스 멤버가 당황했어야 했을텐데 놀라지 않고 계속 노래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는 등 “성기 노출 당사자만 (생방송임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생방송 중 성기노출 의도적?

경찰 관계자도 이들이 공연 중에 아주 가끔씩 알몸을 노출하는 행동을 한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건 전말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네티즌들의 말대로라면 생방송 중 성기 노출은 이미 계획됐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궁금한 점은 20대 초반 남자들이 노래를 부르다가 왜 성기를 노출했냐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적 쾌락을 위해서인가? 사회(또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인가? 아니면 치기인가?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사회에 대한 반항심리가 음악‘벽(癖)’과 잘못 혼합되면서 치기로 변질한 것으로 보인다.

불과 5년 여 전에 청소년기를 거쳤을 럭스밴드 뿐 아니라 지금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세대들이 기성세대와 한국 정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가혹하리만큼 냉철하다.

그러나 이 청소년들은 정치를, 사회를 나서서 바꾸려 하지 않고 무관심한 척하며 냉소적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설령 이들에게 기성세대 누군가가 “너희들 왜 그러니?”라고 묻기라도 하면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웬 참견이냐? 너나 잘하세요”라는 답변을 들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 초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가 이솝우화 중 ‘여우와 두루미’에 대해 학부모와 장학사를 초청해 연구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 얘기의 교훈은 여우와 두루미의 입 모양새가 달라 음식을 담는 그릇이 다르며,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우화를 다 듣고 한 여자어린이가 공책에 그림을 그려 내보였다. 그림은 여우가 두루미를 찔러 죽이고 자기도 자살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교사는 2학년 어린이가 이솝우화를 듣고 너무나 엽기적인 그림을 그린 것에 대해 ‘모두가 어른의 탓이지 아이를 어찌 나무라겠노’라며 아무 말없이 그냥 그 아이를 껴안아 주었다고 했다.

기성세대들의 책임은 없는가

물론 그 아이는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거나 다른 아이들과 다른 처지에 놓여있을 지 모른다. 이런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맞게 되고, 20대가 되었을 때 사회에 대한 반감과 냉소적 성향은 어떻게 분출될 지 자못 궁금해진다.

중국 송대 시인 도연명의 조부인 도간의 어머니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며, 모든 부모는 아이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는 행동을 통해 모범을 보여야 하며, 동시에 말로써 사리를 분명하게 해 아이를 충분히 이해시켜야 한다”고 말보다 행동이 먼저라고 교육했다.

포르노가 성행하고 치기를 뒤집어쓴 예술이 판치는 세상에서 젊은 세대들이 올바른 사고와 진취적인 판단을 할리는 만무하다. 기성세대의 그림자가 젊은세대를 통해 이렇게 충격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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