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재앙은 인간이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판도라의 상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 언론을 보면 ‘이상호의 X파일’ 즉 옛 안기부의 도청 테이프를 두고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상호 기자가 가지고 있던 녹음테이프에서 드러난 권력비리 핵심 언론사인 중앙일보는 사설과 여러 기사를 통해 이 도청 테이프를 두고 공개될 경우 “사회 전반에 대붕괴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며 여론몰이하고 있다.

‘X파일’, 재앙덩어리인가

그러다보니 어느 샌가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 도청테이프를 두고 ‘판도라의 상자’라며 이것이 공개될 경우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우려 섞인 보도를 하고 있다. 나는 먼저 이 안기부 도청 테이프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하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다. 왜냐면 ‘판도라의 상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로 판도라가 호기심에 못 이겨 열었다가 온 세상을 재앙으로 가득하게 만든 물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희망은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도로 갇혀버리는. 그런 재앙 덩어리 상자가 바로 판도라의 상자이다.

그런데 공운영씨 집에서 발견된 274개의 안기부의 도청 테이프가 그런 재앙덩어리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런 것 중에 하나인 ‘이상호 X파일’만 하더라도 무슨 큰 재앙을 불러 왔는지 되짚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97년 대선 당시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 회사의 우두머리가 족벌 언론 중앙일보를 통해 대한민국의 권력을 어찌해보려고 했던 것이 드러난 것이다. 97년 대선이 임박했을 당시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를 보면 누구나 짐작했을 상황이 도청 테이프로 인해 증명된 셈이다.

거대 족벌 언론과 재벌, 정치권력 간의 추잡한 거래가 증거로 드러난 이상 그냥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 중앙일보처럼, 삼성처럼 사과하고 반성하겠다는 말 몇 마디로 때우고 넘어갈 일이 절대 아니다. ‘정말 뼈를 깎는 반성’을 한다면 그만한 책임을 져야한다. 두 번 다시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국민과 독자 앞에 약속함과 동시에 재발 방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것도 X파일이 없었더라면 하지도 못할 지적이다. 만약 중앙일보가 독립언론으로 거듭 태어나지 아니하고 삼성이 재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계속 휘두르고자 한다면 이를 용납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역사의 진실 규명할 상자

이처럼 ‘이상호의 X파일’은 대한민국 과거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사회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깨우치고 있다. 진실은 감추는 것보다 드러내야 제때 정화가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의 ‘후쇼샤 역사 교과서’에 대해 비판과 비난의 칼날을 세우고 있듯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같은 칼날을 세워야 한다. 역사는 절대 왜곡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민족을 배신했던 많은 친일후손들이 부와 권력을 쥐고 있고 반대로 독립투사의 자손은 생계마저 이어나가기 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제대로 과거청산이 되지 않았고 역사가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 때에 진실이 밝혀지고 시시비비를 가려 국가가 운영되었더라면 여러 공화국을 거쳐 오면서 이처럼 왜곡된 역사를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사 진상 규명위원회에서 속속 밝혀내고 있는 우리의 숨겨졌던 과거는 오늘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허탈케 하고 있다.

몇몇 언론이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안기부 도청 테이프를 공개하면 사회 전반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자신들의 기득권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로 비치는 것은 결코 이 테이프가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다. 진실은 숨기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 역사를 왜곡되게 하고 꼬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도청 테이프를 ‘판도라의 상자’가 아닌 역사의 진실을 규명할 ‘블랙박스’로 확신한다. 사소하게 사생활에 관련된 내용은 공개할 필요가 없지만, 아니 공개해서도 안 되겠지만 돈과 권력이 낀 부정부패는 가감 없이 드러내 더 이상 대한민국의 역사가 꼬이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검찰도 불법도청에 초점 맞춘 여론 호도에만 매달려 이상호 기자를 출국금지 할 것이 아니라 사안의 본질인 이건희 삼성회장이나 홍석현 주미대사도 똑같이 출국금지 시키거나 소환조사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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